이번 대선에서 보수진영에 몰표를 던진 시민들이 욕구충족에 눈이 먼 나머지 시민의 양식을 저버린 듯하다. 선거 막바지에 터진 BBK 동영상이 시민의 양심을 촉발하여 이명박 후보를 끌어내릴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성장담론을 주창한 이명박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었다. ‘부자 되세요!’ 정서에 편승한 한나라당의 ‘국민 성공시대’가, 시민의 양식에 호소한 민주평화 세력을 압도한 끝에 이명박 후보가 압승했다.

돈 귀신에 사로잡힌 시민들의 물신화 경향이 민주평화세력의 도덕적인 호소를 외면했을 뿐 아니라, 민주노동당의 계급투표 요구도 물리쳤다. 강남의 부자들이 노무현 정권의 부동산 세금폭탄(?)을 응징하기 위해 외제차를 타고 대거 투표장에 갔다는 기사는 애교로 볼만하다. 그런데 소득이 낮은 서민들의 일부가 가진 자들의 응징대열에 합류하여, 계급투표를 거부한 현실이 우리를 우울하게 만든다.

한마디로 이번 대선은 돈 귀신이 민주 귀신을 추방한 선거이다. 6월 항쟁 이후 20년간 유지된 ‘87년 체제’의 단순한 후퇴에 머물지 않고, 신자유주의의 본당인 이명박 정권이 등장한 점에서 심각하다. 왼쪽 깜빡이를 켜고 오른쪽으로 달린 노무현 정권의 신자유주의를 청산하고, 진짜 오른쪽으로 맹진할 이명박 정권의 신자유주의를 국민의 이름으로 선택한 점이 그렇다. 권력이 좌(左)에서 우(右)로 이동했다는 일부 언론의 평가는 ‘신자유주의 정권의 수평적 이동’이라는 점을 망각하고 있다. 노무현 정권의 ‘사이비 개혁 신자유주의에’서 이명박 정권의 ‘한국판 네오콘(신보수) 신자유주의’로 수평 이동한 것을 놓고 정권교체라며 호들갑떠는 보수언론의 가벼움이 볼썽사납다.

87년 체제가 물러난 자리에 신자유주의 본당이 똬리를 틀고 앉는 ‘시대의 역설’을 어떻게 타고 넘을 것인가? 시대의 역설을 독파하려면, 사회경제적 측면에서 어울릴 수 없는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들이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를 위해 ‘정치적 동맹(?)’을 맺은 사실을 눈여겨 보아야한다. 신자유주의의 희생자인 가지지 못한 자들이 정치적 보수화의 길을 선택한 시대의 역설을 뒤집지 못하는 한, 진보정치의 꿈을 이룰 수 없다.

시민사회운동 진영이 진보정치의 꿈을 이루려면 몇 가지 과제를 풀어야한다. 첫째, 이명박 당선자를 진보인사로 보는 진보의 착시현상을 교정해야한다. 이명박 당선자처럼 불도저로 밀어붙여 대운하를 건설하는 게 진보라고 여기는 ‘진보 착시’ 현상을 교정하지 않으면, 시민사회운동의 미래는 암담하다. 둘째, 이명박 정권의 신자유주의적 실용주의를 요령있게 극복해야한다. 실용주의의 이면에 도사린 ‘유사 파시즘’을 경계해야한다. 셋째, 민중운동 세력과 이명박 정권의 정면충돌에 대비해야한다. 정면충돌 때 위기를 느낀 정권측이 정권안보의 차원에서 국가보안법을 휘두르며 민중운동 세력에 족쇄를 채울 것이다. 넷째, 권력감시에 주력해온 시민운동 쪽의 향후 행보가 주목된다. 일부 시민운동 단체에 대한 정권 측의 선택적 회유를 뿌리치고 더욱 매몰차게 권력감시를 하게 될지 두고 볼 일이다.

시민운동과 민중운동 모두 대선 이후 체제정비의 속도가 늦어지면, 진보세력 전체가 권력으로부터 포위당해 운신의 폭이 좁아질지 모른다. 권력의 역공을 되받아치면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개척하는 고난의 행군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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