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당선자의 대선시기 보건의료 공약을 보면, 먼저 보건의료산업화 공약으로 민간의료보험 활성화, 기업도시 내 외국병원 설립 허용을 포함하고 있다. 다음으로 맞춤형 보건서비스 공약으로 의료급여 수급범위 확대, 중증질환 및 희귀난치성질환의 보장성 강화, 본인부담상한제에 비급여 항목의 점진적 포함을 담고 있다. 마지막으로 예방적 보건서비스 공약으로 건강환경영향평가제도 도입, 어린이.노인 무료 필수예방접종, 건강도시 프로젝트 수행, 응급의료체계 개선, 치매예방 강화 등을 들고 있다.
예방적 보건서비스 공약은 이미 참여정부에 제시된 계획이기 때문에 특별히 차별성을 보일 것은 없다. 결국 의료서비스체계는 지금보다 훨씬 시장화, 산업화 하는 대신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취약계층.연령층에 보장성을 일부 확대하겠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참여정부의 의료산업화 정책으로 의료산업화, 시장화 속도가 더욱 더 빨라진 상황에서 이명박 당선자는 여기에 일부 부실하게 작동하는 제동장치마저 떼어내려 하고 있다. 민간 병의원이 돈벌이에 혈안이 될 수밖에 없었던 시장화 된 의료체계에서 그나마 이를 제어할 수 있었던 두 가지 방어 장치 중 하나인 돈벌이 목적의 영리법인 병원 불허 방침을 참여정부에서해제해 버리더니 또다른 축인 건강보험 체계를 이명박 당선자가 무장 해제시키려 하고 있는 것이다.
선진화 명목 건강보험 재편 추진
대부분 선진국이 완고하게 보건의료의 공공성을 유지, 강화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진화라는 이름으로 보건의료를 시장체계로 전면적인 재편을 추진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이명박 당선자의 선진화 기준이 미국의 표준을 얼마나 잘 따르느냐에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은 최소한 보건의료만 놓고 보더라도 사실이 아니다. 수천만 명이 무보험자로 의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미국의 현실, 천문학적 정부재정과 기업부담, 그리고 국민의 호주머니를 털어 GNP의 15%를 쏟아 붓고도 건강수준이 선진국의 하위권에 머무는 미국의 현실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최소한 국민을 위한다는 논리로 의료산업화 정책을 제시하는 것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
"보험사, 제약회사, 병원 이해 반영 의료공공성 후퇴"
미국 대선에서 핵심쟁점이 민간의료보험체계 개혁이다. 하지만 시장화된 의료체계의 강력한 이해당사자인 제약회사, 민간의료보험, 영리법인 병원 등의 로비와 방해로 인하여 개혁요구가 물거품이 되어 버리기 일쑤였다. 이런 점을 상기해볼 때 미국식 의료 선진화가 가져올 끔찍한 폐해를 짐작해볼 수 있다.
물론 참여정부가 이미 의료산업화의 물꼬를 터버린 상황에서 이명박 정부도 별반 달라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지만 가장 핵심적인 공공인프라라 할 수 있는 건강보험체계를 근본적으로 후퇴시킬 수 있는 민간의료보험 활성화 정책을 핵심 공약으로 제시하고 있을 뿐 아니라 친기업적 성향인 이명박 정부가 보험자본의 이해와 전면적으로 결합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민간의료보험 전면화와 건강보험 약화가 빠르게 현실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 영리법인 병원 등 의료공급구조의 시장화, 산업화를 전면화할 수 있는 재원조달 구조가 확보된다는 점에서 미국식 의료체계가 급속하게 이식될 가능성이 높다.
시민사회 철저한 감시 필요
이명박 당선자는 참여정부를 전면적으로 비판하고 있지만, 정작 참여정부가 범했던 실수를 또다시 범하려 한다. 참여정부는 재벌과 그들을 비호하는 관료 집단에 둘러싸여 그들을 지지하였던 서민의 이해와 반하는 정책을 추진하였고 국민의 심판을 받았다. 이에 대한 반사이익으로 당선된 이명박 당선자가 국민의 이해와 반하는 방향, 즉 민간보험회사, 제약회사, 병의원 등의 요구에 따라 의료시장화, 의료산업화의 방향으로 간다면 결국 국민 심판을 피하기 어렵다. 실패를 답습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이명박 정부가 또 다시 실패를 답습하지 않도록 시민사회의 철저한 감시와 비판이 필요할 때이다.
임준 가천의대 교수, 의료연대 정책부위원장
임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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