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거중심 집회시위대응 국민기본권 침해로

‘실용’ 정부에서 소외된 목소리가 묻힐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다.

대통령직 인수위는 지난 16일 정부조직법 개편안 발표를 통해 국가인권위를 대통령 직속으로 전환한다고 밝혔다. 시민사회는 인권위가 대통령 직속으로 전환될 경우 인권이 정부정책의 ‘종속변수’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인권위가 소외된 이들을 대변하는 목적 수행에 장애가 생길 것이란 전망이다.

이에 앞서 14일 경찰청은 폴리스라인(경찰저지선)을 넘는 시위자는 전원 연행하고 전자총과 최루액 사용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혀 인권단체들로부터 집회시위의 자유 침해 지적을 받았다. 인권시계가 거꾸로 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독립성 종전만 못할 것”=인수위 기획조정분과 위원인 박형준 의원은 17일 정부조직 개편 과정에서 국가인권위원회를 대통령 직속으로 설치한 것과 관련 "인권위가 독립기관으로 있다고 기능을 꼭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인권위의 대통령 직속기구화 발표에 대해 인권단체연석회의, 민변, 참여연대, 경실련 등 시민사회는 독립기구의 위상 심각하게 침해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대통합민주신당, 민주노동당 등 정치권도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지난 7년간 국가인권위는 독립기관으로 운영돼 오며 대통령의 입장과 배치되는 권고안을 지속적으로 발표해 왔다. 하지만 인권위가 독립기관의 지위를 보장받지 못한다면 지금까지의 활동을 지속하기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국가인권위 사무총장을 역임했던 곽노현 방송통신대 교수는 “대통령 소속이 된다면 독립성이 종전만 못하게 된다”며 “독립적인 지위에서 대통령의 방침, 주요정책에 딴지를 걸 수 있는 환경에서 효율보다는 소수를 고려하는 인권의 관점에 나올 수 있는데 앞으로는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껄끄러워 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정부조직법 상 대통령 비서실에서 소속 기관에 대해 보고를 받게 돼 있다”며 “그 과정에서 몇 가지 내부관행이 바뀔 수가 있다”고 말했다.

◇헌법 위배? 궁색한 변명=커지는 우려 속에서 인수위가 밝힌 대통령 직속 개편 이유는 궁색하다는 지적이다. 인수위는 독립위원회의 지위가 헌법의 권력분립 원칙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는 이유를 밝혔다. 이명박 당선자도 지난 17일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을 만난 자리에서 “독립기구화로 하고 싶었지만 헌법에 위배된다고 해서 그렇게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국가인권위는 긴급 전원위원회를 개최해 인수위의 전환 근거를 비판했다. 전원위원회는 “권력분립 원칙은 국가로부터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국가인권위원회는 헌법이 정한 인권 보장 의무에 따라 국회 입법 절차에 의해 설립된 독립기관”이라며 “사회가 급변하면서 기존 3권 분립론으로 설명 안되는 다양한 국가기관이 등장하는 것이 세계적 추세다. 미국의 독립규제위원회 등이 대표적 사례”라고 인수위의 헌법위배론을 일축했다.

조국 인권위 비상임위원(서울대 법대 교수)은 “무소속 국가기구로 만든 이유는 입법, 사법, 행정 특정 권력 아래서 뿐 아니라 바뀐 권력에 대해서도 자유로운 비판을 해야 한다는 취지였다”며 “인수위 발표대로라면 행정부에 대한 비판이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곽노현 교수도 “이미 헌법 논란은 7년 전에 타결된 문제”라며 “무소속으로 해도 위헌이 아니며 그래야 비로소 인권이 보장될 수 있다는 국민적 합의가 이뤄진 사안”이라고 말했다.
궁색한 이유가 알려지면서 대통령 직속 전환 추진에 대한 걱정과 인권 전반의 후퇴를 염려하는 목소리는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다.

김희수 전북대 교수는 “인권위를 대통령의 의중을 반영하는 기관으로 전락시키려는 것은 놀라는 발상”이라며 “엄포용인지 길들이기 위한 것인지 좀 더 봐야 하겠지만 민주주의와 병립적일 수밖에는 인권확대의 성과를 일거에 무너뜨리려고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부 기조 반한다면 ‘탄압’=인권위 논란과 함께 경찰청이 집회 엄정 대응 방침까지 내놓자 인권단체들은 이명박 정부 출범 이전에 벌써 인권시계가 거꾸로 가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경찰청이 14일 발표한 집회시위 통제 방침은 '대치 중심'에서 '검거 중심'으로의 전환이 주내용이다. 집회시위에 참가한 시민들을 버스와 전의경으로 포위해 통제하던 기존 방식에서 더 나아가 체포조를 공격적으로 운영해 경찰 통제를 벗어나는 참가자들을 전원 체포하겠다는 것이다. 시위 현장에서 전기충격총이나 최루액 등 강화된 진압 장비를 사용하겠다는 내용도 들어있다. 경찰청은 이를 집회시위대응 매뉴얼로 구체화해 올 하반기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이에 인권단체연석회의는 “이명박 정권이 집회시위에 대해 더욱 공격적인 대응을 하려는 이유는 명확하다. 소수 기득권층의 이익을 강화하고 대다수 서민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정책들을 서둘러 추진하겠다고 밝히고 이를 불도저식으로 밀어붙이기 위해선 반대 목소리를 막고 반발과 저항을 억누를 물리적 힘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김희수 교수는 “집회의 자유가 신성불가침한 절대적 기본권은 아니기 때문에 집회에서 폴리스라인을 지켜야 하는 것은 맞다”며 “하지만 경찰이 편의적이고 임의적으로 폴리스 라인을 쳐놓은 상태에서 이것이 지켜지지 않는다고 무조건 연행할 때 집회 자유는 침해되고 인권침해 가능성도 커진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인권위 전환과 집회시위 대응책 등 일련의 내용은 인권이 정치적 성향과 관련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님에도 차기 정부가 인권 잣대를 선거 잣대로 치환하려는 것이 아닌가 싶어 우려된다”며 “결국 이명박 정부가 소수자의 목소리에 대해 배려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심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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