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만 있고 가해자는 없었다. 한달 보름이 지나 사고의 직접 당사자인 삼성중공업은 그제서야 사과문을 일부 일간지에 올렸다. 그리고 그만이었다. 정부 역시 석연찮은 사고 수사로 분노에 불을 붙였다. 정치 특수를 맞아 정당 사람들도 기름걸레를 들고 나섰지만 어민들의 속을 풀어줄 명쾌한 답은 못주고 있다. 지난 23일 서울역 광장 앞에 모인 4천여명의 피해 어민들은 정부가 나서서 이번 사태를 주도적으로 해결할 것과 태안을 살려낼 삼성의 ‘무한 책임’, 사태 원인의 실체적 규명과 책임자 문책을 요구했다. 시민사회도 가해자와 정부의 무책임을 문제 삼고 나섰다. 서해 어민들의 절규에 이제 누가 답을 해줘야 할까. |
삼성 무한책임·특별법 제정 촉구
서해 앞바다 기름유출 사고이후 생계가 막막해진 태안·서산 지역주민들이 지난 23일 서울로 올라와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기약없는 보상절차와 불투명한 생계대책, 삼성중공업의 무책임한 태도로 인해 분노한 주민들의 절규가 서울역 광장을 가득 메웠다.
이날 오후 약 4천여명이 운집한 서울역 광장 한켠에는 ‘우리가 끝이면, 너희도 끝이다’라는 대형 펼침막이 걸렸다. 태안을 죽음으로 내몰아놓고 진심어린 사과도 않는 삼성을 겨냥한 메시지였다.
주민들은 매서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완전보상 △완전복구 △무한책임 등을 요구하며 피해대책을 촉구했다. 태안유류피해대책위원회는 결의문을 통해 “정부가 나서서 이번 사태를 주도적으로 해결할 것, 삼성 이건희는 무한 책임을 지고 태안을 살려 낼 것, 검찰은 대오각성하고 책임자를 문책할 것, 특검법을 발의해 이번 사태의 원인과 책임규명을 명확히 할 것” 등을 주장했다.
◇“이건희는 왜 못오나”=‘서울에서 평양까지’라는 노래를 개사한 ‘삼성에서 태안까지’라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삼성에서 태안까지 택시요금 2만원, 명박이도 오고 노무현도 오고 안오는 이 없는데, 국민 땜에 먹고 사는 이건희는 왜 못 와, 우리 민족 우리네 땅 삼성은 왜 못 와.” 주민들을 죽음으로 내몰고도 사과 한마디 않는 초일류기업의 행태를 꼬집는 민중가요는 이미 ‘군민의 노래’로 자리매김한 듯 했다.
 |
| 이향미 기자 |
| 서해 앞바다 기름유출 사고이후 생계가 막막해진 태안·서산 지역주민들이 지난 23일 서울로 올라와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
본 대회 전, 정치인들도 앞다투어 등장했다.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은 “삼성 본관 앞에서 열렸어야 하는 이 집회가 삼성그룹의 방해로 서울역에서 열렸다. 120만명의 국민들이 태안을 방문해 자원봉사활동을 했지만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한번도 내려오지 않았다”며 “수백억 미술품을 팔아서라도 삼성은 피해보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 의원은 “아직까지 주민들은 생계비 한 푼 지급되지 않았는데 3천억원 선지급을 통해 주민들의 생계비부터 해결할 수 있도록 앞장서 싸우겠다”고 말했다. 충남 출신의 변웅전 전 국회의원도 무대에 올라 주민들을 향해 “제발 죽지 마시라. 죽을 용기로 힘을 합쳐 태안을 살려내자”고 호소했다. 대통합민주신당, 한나라당, 국민중심당 소속 국회의원들도 얼굴을 비추며 “특별법 제정과 즉각적인 선보상을 하도록 힘쓰겠다”고 말했다. 사고 50일이 다 돼가지만 생계비조차 받지 못한 주민들은 정치권에 강한 불만을 표하기도 했다.
◇“어민 반란 일어날 수도”=이어 기름유출 사고를 일으키고도 책임을 회피하는 삼성과 피해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는 정부를 규탄하는 발언이 이어졌다. 김진묵 태안유류피해대책위원장은 “우리는 울화통이 터지는 심정으로 삼성이라는 거대 기업과 검찰을 고발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다”며 “삼성은 이제라도 피해주민 앞에 나와서 직접 협상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이어 “만약 그렇지 않으면 동학혁명의 뜻을 이어 어민 반란이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전완수 피해대책위 비수산분야 사무국장은 “검찰의 발표에 아무런 비판도 않던 정치권이 특별법을 만들어준다고 한다. 특별법이 무슨 만병통치약인가. 내용도 없이 특별법 만들어준다고 무슨 희망이 있겠나. 정치권과 정부와 삼성은 우리의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하고 있다. 현실적인 정책, 피부에 와닿는 정책을 만들어 달라”고 정치권에 요구했다.
◇삼성제품 망치질…불매운동도=곧이어 상징의식이 시작되자 집회 분위기가 더욱 가열됐다. 어민들은 기름유출 사고를 낸 삼성중공업의 예인선단과 현대오일뱅크의 허베이스피릿호의 모형을 망치로 내리쳤다. 검찰 수사에서 중과실 책임을 면한 삼성의 가전제품과 삼성로고가 붙은 상자도 부서졌고, 급기야 ‘삼성불매운동에 들어가자’는 이야기도 흘러나왔다. 무대 왼편에는 기름으로 범벅이 된 김과 굴, 생선들이 널부러졌다. 각종 해산물과 어구들도 이날 포대에 담겨 폐기처분 됐다.
이어 태안군민을 대표해 나온 전미선(태안군 신진도·47)씨가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했다. 전 씨는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죽어서 돌아왔다. 당장 쌀이 떨어지고 손녀 학교 보내며 쥐어줄 돈이 없을 땐 차라리 목숨을 끊고 싶다”며 끝내 눈물을 쏟았다.
◇삼성에 항의서한 전달…묵묵부답=서울역 광장에서 집회를 마친 태안주민들은 태평로 삼성 본관 앞으로 진출하려 했지만 역 광장을 에워싼 전경들의 차에 가로막혔다. 경찰과 대치한 주민들은 “사고 장본인 삼성 이건희에게 따지러 가는데 경찰이 왜 막느냐”며 항의하며 전경들과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삼성 본관으로 몰려간 일부 주민들은 ‘삼성 타도’를 외치며 가지고 기름에 오염된 수산물을 바닥에 뿌렸다. 이어 주민들은 ‘부도덕한 삼성과 이건희를 고발한다’는 항의서한을 통해 “삼성과 이건희는 태안군민에게 백배 사죄하고 무한책임을 약속하라”며 “태안 살리기에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협력할 것”을 촉구했다.
이향미 기자
이향미 @
<저작권자 © 시민사회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민주당, 사하갑 이성권·이갑준 ‘부정선거 혐의’ 고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