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평 모녀 죽음을 기억하고 추모합니다”

땜질식 처방은 그만 “진짜 변화가 필요합니다”…시민사회 공동기자회견 양병철 기자l승인2018.04.13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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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일 오후 기자회견에 참가자들의 모습과 발언 중인 박영아 변호사(아래)의 모습이다. <사진=참여연대>

엄마가 네 살배기 딸과 극단적인 선택을 한 충북 증평의 모녀 사망사건. 시신은 몇 달째 방치돼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관련해 빈곤과 복지의 근본적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시민사회단체 공동기자회견이 12일 광화문 광장에서 열렸다.

증평 모녀가 생활의 어려움을 겪었지만 지원을 받지 못한 현실과 죽음 이후 수개월만에 발견된 사실에 대해 많은 이들이 안타까움을 느끼고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수사가 진행 중인 부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채무와 소득 중단으로 인한 빈곤, 그러나 아무런 도움을 받을 수 없었던 현행 제도의 한계, 비슷한 위기에 처한 이들이 많다는 것, 복지부와 정치일각의 해법에 대한 우려를 전하기 위해 기자회견을 했다.

복지부의 대책 발표와 여러 지자체의 일제조사 선언이 있지만 이는 송파 세모녀의 죽음 이후에도, 화장실 삼남매 보도 이후에도 나왔던 미봉책일 뿐이다. 실효성 없는 단기 대책이 아니라 진짜 해결에 다가설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때이다.

이들 가족이 겪었던 문제는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 기자회견 개요

◯ 일시: 4월 12일 오후 1시

◯ 장소: 광화문 광장

◯ 공동주최: 3대적폐폐지행동 / 기초법바로세우기공동행동 / 빈곤사회연대 / 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

◯ 발언 순서​​​

- 이형숙 (3대적폐폐지행동 공동집행위원장)

- 쌔미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 상임활동가)

- 박영아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 조계종사회노동위원회

◯ 기자회견문 낭독

- 한음 (홈리스행동 활동가)

- 박영민 (공공운수노조 사회복지지부 사무처장)

▶ 기자회견문

지난 4월 6일 증평 모녀의 죽음이 알려졌다. 사업실패로 인한 가족의 해체, 건강보험료 체납, 거주중인 임대주택의 보증금을 넘어서는 부채 등 죽음 직전 증평 모녀의 삶은 명백한 위기 상황이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장관은 위기가구 발굴 시스템을 강화하고 복지지원 연계를 활성화하겠다고 발표했고 증평군은 공동주택을 중심으로 관리비나 임대료를 3개월 이상 연체한 가구 조사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자유한국당은 사회보장급여법상 위기가정의 범위를 완화하고, 자살 유가족 관리를 강화하는 ‘증평 모녀법’을 발의하겠다고 나섰다.

우리는 송파 세 모녀의 죽음 이후 발표된 대책들과 한 끗 차이도 없는 대책들에 허망함을 느낀다. 송파 세 모녀법이 송파 세 모녀가 살아 돌아와도 아무런 보장을 받을 수 없었던 것처럼 이번 보건복지부의, 증평군의, 자유한국당의 대책도 증평 모녀와 같은 상황에 처한 이들에게는 빈 수레에 불과하다.

송파 세모녀의 죽음이후 복지 사각지대 발굴을 위한 일제 조사가 여러 차례 이루어졌고 찾아가는 동주민센터와 같은 직접 발굴 프로그램들도 개발되었지만 여전히 반복되는 사회적 죽음을 막지 못했다. 대상자들을 발굴해도 경직된 공적지원체계 내에서 지원할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조사를 통해 발굴된 대상자들의 대부분은 복지제도의 까다로운 선정기준 앞에 뒤돌아서야만 했다.

현대의 빈곤의 양상이 다양해지는 만큼 공공부조 수급자에 대한 엄격한 잣대도 변화되어야 한다. 증평 모녀와 같은 상황에 처한 빈곤층은 앞으로 늘어날 것이다. 한국의 불안정한 노동시장 하에 자영업자들이 우후죽순 늘어나고 있다. 대부분 높은 부채를 안고 자영업에 뛰어든 자영업자들의 5년 내 생존율은 20%에 불과하다.

사업이 실패한 자영업자들은 높은 부채와 중단된 소득으로 인해 당장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이는 가족의 해체/축소로까지 이어진다. 증평 모녀가 죽음 직전에 겪었던 일들이다. 그리고 현재 자영업에 종사하는 많은 이들이 이 과정의 중간 어딘가에 있다.

언론에서는 연일 증평 모녀의 자산과 부채 내역에 대해 지나치도록 상세히 다뤘다. 증평에서 나름 좋은 아파트에 살며, 자동차를 소유했고, 당장 통장에 몇 푼의 돈이 있었다는 것을 근거로 생활고가 아닌 처지를 비관한 죽음이라는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이는 공적지원체계가 경직된 만큼 공공부조 수급자가 될 자격, 즉 ‘진짜’ 가난에 대한 인식 수준 또한 경직되어있음을 시사한다. 가계부채가 최고점에 달한 현재에 자산 내역만으론 그들의 실제 생활의 어려움을 파악할 수 없다. 심지어 언론에 자료를 제공한 곳은 공적지원체계의 보장기관인 증평군이다. 이는 고인에 대한 모욕일 뿐만 아니라 공적지원체계의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위축시킬 위험이 있다.

사회적 죽음이 발생할 때마다 반복되는 땜질처방이 아닌 근본적인 해법은 공적지원체계로의 진입 장벽을 낮추는 것이다. 그동안 정부가 수급자 관리를 엄격히 하겠다는 미명하에 위기 상황에 빠진 이들을 제도 밖으로 밀어낸 것을 비판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생활의 어려움은 건강보험료 체납 몇 개월, 월세 체납 몇 개월과 같은 위기상황 점수의 합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이러한 점수의 합을 통해 사각지대를 발굴‘만’ 하는 것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다양한 빈곤 양상에 맞는 유연한 공적지원체계를 마련하여 어려움에 빠진 국민들이 언제든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사회적 죽음을 멈출 유일한 방법이다. 일시적인 전수조사와 발굴체계 개편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빈곤에 대한 인식 변화를 통한 중장기적인 대책을 시급히 마련하라.

2018년 4월 12일

<빈곤과 복지의 근본적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시민사회단체 공동기자회견> 참가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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