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다양성-천연기념물 연산 오계(烏鷄)

황제 닭, 이 생명 하나 못 살려내는 세상이 어찌 문명이랴? 강상헌 논설주간/우리글진흥원장l승인2018.09.06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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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잘생겼다. 진도개(천연기념물 제53호) 얘기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좋아한다. 이 녀석을 보려고 아이들 데리고 진도를 찾은 여러 가족 보며 기뻤던 기억 새롭다. 경산의 ‘귀신 쫓는 개’ 삽살개(368호), 경주의 동경이(540호)도 그렇다. 모두 총기(聰氣) 넘치면서 당당하다.

역사와 전통이 빚은 토종(土種) 동물의 대표라 할 이 개들은 지역과 주민의 자랑이다. 관광자원으로, 두말할 나위 없는 ‘돈 보따리’이기도 하다. 멋진 저 개들이 품고 있는 이야기 바구니 또한 화수분이다. 요즘 말로 ‘콘텐츠’의 마르지 않는 샘이려니. 제주마(347호)는 또 어떤가?

그 지역에 저 녀석들이 온 것은 행운이지만, 그 행운을 지키고자 땀 흘린 선조들의 어진 마음이 퍽 귀하다. 함께 사랑하는 대상인지라 애향심의 바탕이기도 하겠다. “우리 진돗개는 말이요잉...”하는 동네 사람들 말투에 묻어난다.

논산의 대표 이미지 중 하나일 법한 오계(烏鷄), 아담하고 당찬 몸매와 서슬 퍼런 볏이 아름답다. 까만 눈동자의 눈빛은 오만하게까지 느껴진다. 진돗개에 지지 않을 인상, ‘닭의 황제’라 할만하다. 작은 몸매 안에서 야생성 이글거린다. 까마귀 오(烏)는 ‘검다’는 뜻으로도 쓰인다.

문기(文氣) 풍기는 이름의 논산(論山)은 계룡산 자락이다. 어찌 은진 미륵부처님과 개태사 쇠솥만 명물이랴? 계룡산 이름에 든 닭(鷄 계)이 온통 시커멓게 거기 서있음은 신령스럽다. 이 ‘까만 황제 닭’이 ‘관광 논산’ 깃발의 화룡(龍)점정일 터, ‘鷄龍山 정기’의 바른 활용법이겠다.

진돗개가 진도의 자랑을 넘어 한국의 진돗개로 깃발 날리고, 세계적인 견공(犬公)의 반열에 오른 것을 계룡산 자락 사람들과, 특히 논산시는 열공할 일이다. 저 멋진 오계가 비실대다 자취도 없이 스러진다면, 그 이름도 역사에 묻힌다면, 그 한(恨)을 누가 어찌 풀랴?

국가가 천연기념물 제265호로 지정한 연산의 이 오계가 멸종위기라는 소식이다. 저 한 가닥 생명의 순수마저 우리는 못 지켜내는가? 이 문명에는 ‘치킨닭’과 오계, ‘똥개’와 진돗개가 같은가? 미묘한 그 차이는 문화의 상징일 터다. 이 전통은 ‘문화인’의 자랑이면서 의무다.

‘닭 엄마’ 계모(鷄母)를 자처하는, 천연기념물 ‘연산오계’ 국가지정관리자 이승숙 대표의 눈빛은 형형하다. 생명의 뜻 보듬은 금도(襟度)를 너끈히 살아내는 도인(道人)의 눈총인가? 너그럽지만, 결코 만만치 않다.

“얘들을 살리려면 눈에 불을 켜야 돼요.” 그의 말이 문득 가슴을 친다. 의로운 사람을 외롭게 두면 안 된다는 생각이 다시 절실하다. 그가 명예로운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아 모든 것 바치며 지키는 이 가난한 가보(家寶), 실은 우리 모두의 것이다.

그의 ‘생명의 뜻’은 국제적 이슈인 생물다양성(生物多樣性 biodiversity)이라는 개념의 다른 이름이겠다. 동전의 앞뒷면이라 할까? ‘생명감수성’이라고도 새겨봄직 하다.

생물다양성은 ‘수백 만여 종의 동식물, 미생물, 그들이 담고 있는 유전자, 그리고 그들의 환경을 구성하는 복잡하고 다양한 생태계 등 지구상에 살아 있는 모든 생명의 풍요로움’ 즉 ‘지구 생명(Life on Earth)의 상황’을 뜻한다. 국제기구들의 정의(定意)이다.

사람의 몸과 마음이 ‘작은 우주’이듯, 생명의 우주, 생태계(生態界)는 오묘하고 장엄하다. 이 부문 원리의 해석으로 대중적 지지까지 얻고 있는 최재천 교수(생태학)의 이 글은 저 정의만큼 적실하다. 생태계와 인간의 관계에 대한 적나라한 실증의 하나다. 인용한다.

<... 거의 하루 하나씩 달걀을 낳아주는 닭들이 조류독감으로 고생한다. 의심 신고만으로 당국은 바로 닭장을 다 묻어버린다. 인류가 오래 ‘알 잘 낳는 닭’을 인위적으로 선택해온 바람에 우리가 기르는 닭들은 거의 ‘복제 닭’ 수준으로 유전자 다양성을 상실했다.>

그 선택이란 것은 실은 유전자 등의 조작(操作)이다. 제대로 된 바이러스가 공격한다면, 면역력이 낮을 수밖에 없는 저 닭들의 거의 모두는 사라질 수 있다. 그리고, 어찌 되나.

<... 우리는 메추리알로 만족하거나 아니면 닭의 조상인 동남아 정글의 멧닭(jungle fowl)을 데려다 다시 가축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엄청난 긴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멧닭 마저 야생에서 멸종하고 만다면...>

가축화는 닭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인간의 이익을 위한 농사 기술이 되돌아 생태계를 할퀸다. 결국 인간이 비극의 결말을 뒤집어쓴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시간과 공간이 다르니 서로를, 그 이유를 모른다. 그 악순환을 레이첼 카슨은 1963년 저서 ‘침묵의 봄’에서 ‘고발’했다.

봄이 와도 환희의 새싹이 없다. 그 공포는 비할 데가 없는 것이다. 이런 공포 같은 심정의 공유나 이심전심(以心傳心), 통찰력이 곧 생명감수성이다. ‘당장 나 죽는 것이 아니다. 무슨 상관이냐?’하는 심보는 생명감수성이 아주 낮은 것이다. 그 결과는 머지않은 공멸(共滅)이다.

▲ 오계와 오골계(烏骨鷄)의 차이, 오계의 야생성, 애완성과 식품성 같은 오계의 여러 모습을 ‘계모’(鷄母) 이승숙 연산오계재단 대표가 설명한다. (이영범 사진작가 제공)

토막새김

튼실한 닭의 씨앗 ‘멧닭’

‘논산시 연산면의 오계가 딱 최 교수 글 속의 ‘멧닭’ 역할이겠다. 인간의 전략이 짜 맞춘 환경이라는 한계는 있을지언정, 이 ‘생태계의 방주’ 속에서 토종 또는 깃대종은 ‘지속가능한 세상’을 위한 최소한의 보험 또는 안전장치다. 천연기념물 제도나 국립생태원의 존재 이유도 같다.

온 몸이, 뼈까지 검은 닭이 오계(烏鷄)다. 오골계와는 품종이 다르다. 조선 후기의 진상품이다. 중병 앓던 숙종이 연산의 오계를 먹고 거뜬하게 일어났다고 한다. 연산군 때에는 일반 백성이 오계를 함부로 먹는 것을 금했다. 맛이 좋아 남획(濫獲)을 걱정해야 할 상황이었으리라.

동의보감이 약재로 특기(特記)했다. 조용헌 교수(동양학)는 ‘오계의 검은 색은 정력을 증강시킨다. 오행(五行)에서 검은 색은 신장을 강화하는데 정력은 신장에서 나오는 것이다. 검은 색 식품인, 야생에 가까운 오계로 지은 삼계탕은 그래서 내내 명물로 대접받는다’고 썼다.

오계는 생산성이 낮다. 고기나 달걀을 인간에게 주기 위해 육종(조작)된 녀석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금으로 이를 지켜 체형과 성품을 보존하는 것이 천연기념물의 뜻이다.

생명감수성의 선견지명이 이런 제도를 만들었다. 국제적인 종자전쟁을 이겨낼 튼실한 닭의 씨앗이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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