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안보론’을 주목하라

평화운동가 김승국의 '안민을 통한 안보' 김승국l승인2008.05.26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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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 공자, 묵자 등의 ‘안민을 통한 안보’는, 춘추전국 시대의 전쟁에 반대하는 ‘반전비전(非戰) 평화공동체’에 중점이 있다. 십자군 전쟁 등 무수한 전쟁을 치른 서양의 경우에도 ‘전쟁방지·금지의 안보관’이 우세하지만, 동양세계와 다른 반전비전론(非戰論)을 제시했다. 칸트(Kant)의 상비군 반대논리와 묵자의 비전론이 다르며, 맹자의 의전론(義戰論)과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의 ‘정의의 전쟁’(Justice War)론이 다르다. 법가의 부국강병론과 서양 현실주의자(Realist)들의 부국강병론의 내용이 다르다.

이렇게 전쟁관-반전비전론을 에워싼 동서양의 차이점이 존재하지만‘국가가 안보를 책임져야한다’는 국가 안보론에는 동서양의 차이가 거의 없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수천 년 동안 국가 안보론이 지배적인 담론이었다. 그런데 ‘국가만이 시민과 국민의 안전보장을 책임질 수 있다는 국가 안보론’은 1990년대 이후(탈냉전 시대)의 전쟁양태 변화로 말미암아 흔들린다.

1990년대에 들어서서 국가 간의 전쟁은 감소되는 추세였지만 국가 내부의 내란이나 인종 분규가 발생하는 빈도가 증가하면서 국제사회에서 안보의 대상으로써 인간 문제에 대한 관심이 현저하게 부각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내란이나 민족 분규의 희생자는 대체로 군인보다는 민간인이 많았다. 극단적인 경우 인종청소나 대량학살이 자행되어 무고한 민간인 희생자가 엄청나게 희생되는 사태를 초래하기도 했다. 오늘날 국제사회에서 무력을 수반한 분쟁의 90% 이상이 내란인 것으로 나타나면서 외부 위협으로부터 시민의 안보를 보호한다는 국가안보(state security)의 중요성은 점차 감소되기에 이르렀다. 무고한 시민들이 각종 내란으로 인해 엄청나게 희생되는 사례가 빈번히 발생하면서 안보의 개념이 국가에서 인간으로 확장되기에 이르렀으며, 여기서 ‘인간안보’라는 새로운 개념이 부각된 중요한 배경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세계화의 급속한 진전 역시 안보 개념의 확대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세계화의 급속한 진전과 함께 국제사회에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극도의 빈곤, 기아, 질병에 시달리게 되었다. 또한 마약, 국제조직 범죄, 테러, 국제적 자금세탁, 불법 이민 등 국제사회에서 비국가 행위자들의 활동이 국가는 물론 개인의 안전에 심각한 위협요인으로 작용하게 되는 사례들이 빈번히 발생하게 되었다. 어쨌든 세계화의 진전은 국가 중심적 시각을 벗어나 전 지구촌의 문제로 사고의 범위를 확장시키는 계기를 마련했으며, 특히 지구촌의 내부에 살고 있는 인간의 안보 문제에 대한 관심이 더욱 부각되기에 이르렀다.(전 웅, 2004)

‘인간안보(human security)’는 1994년 UNDP(유엔개발계획)의 연례보고서인 <인간개발 보고서>(the 1994 Human Development Report)에서 제기됨으로써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1994년판 <인간개발 보고서>(the 1994 Human Development Report)는 위협요인을 7개 영역으로 나누어 경제안보(Economic Security), 식량안보(Food Security), 보건안보(Health Security), 환경안보(Environmental Security), 신체안보(Personal Security), 공동체안보(Community Security), 정치안보(Political Security)의 7개 영역으로 인간안보를 설명하고 있다;

<시민사회신문DB>
UNDP(유엔개발계획) 인간안보의 요건 중 기본식량에 대한 식량안보와 최소 질병, 유해한 생활양식으로부터의 보호를 이야기하는 보건안보를 중요한 비중으로 다루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8월 광우병 위험 쇠고기 검역재개와 한미FTA에 반대하는 집회 장면.

첫째, 경제안보란 생산 및 유급 작업, 노후에는 공적부조를 통해 개인의 기본소득을 보장하는 것이다. 둘째, 식량안보는 모든 사람이 언제나 기본식량에 대한 육체적, 경제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셋째, 보건안보는 최소한 질병과 유해한 생활양식으로부터 보호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넷째, 환경안보는 단기적, 중장기적인 자연의 파괴와 훼손으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는 것이다. 다섯째, 신체안보란 신체에 대한 폭력으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는 것이다. 여섯째, 공동체안보란 전통적 관계나 가치의 훼손을 막고, 특정 종파나 소수민족에 대한 탄압으로부터 사람들은 보호하려는 것이다. 일곱째, 정치안보는 인간의 기본인권이 존중되는 사회에서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조성렬, <평화 만들기> 256호, 2006)

이어 유엔 밀레니엄 정상회의(2000년 9월)에 의해 설립된 ‘인간 안전보장 위원회’(the Commission on Human Security)의 공동의장에 아마티아 센(Amartya Sen)이 취임함으로써 주목을 받았다. 인간 안전보장 위원회는 2003년에 최종 보고서를 냈는데, 이 보고서에서 정의하는 인간안보 개념은 다음과 같다.

“인간안보의 목적은 인간의 자유와 성취도를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모든 인간의 핵심적인 가치를 보호하는 것이다. 인간안보는 근본적인 자유 즉, 삶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인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심각하면서 도처에 만연된 위협으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인간의 생존, 인간다운 삶,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정치, 사회, 환경, 경제, 군사, 문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 안전보장 위원회의 2003년 보고서는 인간안보의 기본적인 문제로서 다음의 10가지 사항을 거론한다. ①폭력을 수반하는 분쟁 아래에 있는 사람들을 보호한다. ②무기의 확산으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한다. ③이동(이주)하는 사람들의 ‘인간안보’를 확보한다. ④분쟁 이후의 상황에서 ‘인간의 안전보장 이행 기금’을 설립한다. ⑤극도의 빈곤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은혜를 입을 수 있도록, 공정한 무역, 시장의 발전을 지지한다. ⑥보편적인 최저생활 수준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인다. ⑦기초 보건의료의 완전보급 실현을 위해 예전보다 더 높은 우선도(優先度)를 부여한다. ⑧특허권에 관하여 효율적이고 균형 잡힌 국제 시스템을 구축한다. ⑨기초교육의 완전보급에 의해 모든 사람들의 능력을 강화한다. ⑩이 지구에서 살아가는 인간에 걸맞는 정체성(identity)의 필요성을 명확히 한다.
인간 안전보장 위원회의 2003년 보고서는 위의 10개 항목 등을 통하여 아마티아 센의 인간개발(Human development)론과 관련이 있는‘Empowerment(능력배양)’‘Entitlement(權原)’‘Capability(잠재능력)’를 강조한다.

아마티아 센은 인간개발(인간적인 개발 human development)과 인간의 안전보장(human security)을 상호보완적인 대당(對當) 개념으로 이해한다. 인간적인 개발은 진보와 증진을 주안점으로 삼아 활력에 넘치는 낙천적인 성질을 지닌다. 이에 반하여 인간의 안전보장은 지켜야할 것을 지키기 위한 후방지원에 투철하다. 사람들의 선택폭을 확대하는 과정으로서의 인간적 개발은 빈곤삭감과 거의 동의어이다. 아마티아 센은 ‘빈곤과 기근’(Poverty and Famines)에서 빈곤을 돌발적인 식량 권원(entitlement)의 붕괴로 묘사한 뒤 그 연장선상에서 기근, 만성적인 굶주림을 극복하기 위한 실천적인 대책을 인간안보의 차원에서 거론한다. 아마티아 센은 권원 개념의 대당 개념이 된 잠재능력(capability) 개념을 제기했다. 잠재능력은 권원의 달성을 전제로 삼아 개인의 ‘생활방식의 폭’을 넓혀가는 제도개혁, 공동행동에 조응하는 것으로서, 곧바로 인간개발 쪽으로 접속된다. 아마티아 센의 저서 <굶주림과 공공행동>(Hunger and Public Action)에 따르면, 파국적인 기아를 방지하는 정책론의 기초에 권원개념이 위치 지워지는 한편 잠재능력 개념은 일상의 영양부족, 감염증(感染症), 교육의 결여 등 주로 만성적인 문제에 적용된다. 즉 권원은 모든 자유의 전제인 ‘굶주림으로부터의 자유’에 대응하고, 잠재능력은 교육, 건강, 공동체 생활, 자존심을 향하는 적극적 자유의 실현에 대응한다.(西川 潤, 2006)

아마티아 센의 논리에 따르면, 죽음에 이르는 기아는 ‘권원의 결여’ 때문에 발생한다. 굶주림으로부터 생기는 기근은 식량 권원의 결여만이 아니라 더욱 광범위한 권원의 결여(기근 때문에 발생하는 전염병 등)와 관련된 문제이다. 인간의 안전(인간안보)과 깊은 관련이 있는 빈곤은 ‘개개인의 기초적인 잠재능력이 결여되어 있는 상태’이고, 인간적인 개발, 내발적 발전은 ‘개개인의 잠재능력을 확대하는 것’이다. 잠재능력이 결여되어 있는 상태가 ‘권원의 박탈’이다.

이처럼 아마티아 센이 생각하는 인간안보는 ‘굶주림으로부터의 자유’를 실현하는 것을 가리키며, 인간의 내발적 발전의 권원, 잠재능력과 관련이 깊다. 그러므로 잠재능력을 주체론, 권원을 제도론으로 위치지우며, 잠재능력-권원이라는 대당 개념을 인간적인 개발(점진적인 선택자유의 확대)-인간의 안전보장(돌발적인 후퇴에 대응하는 능력의 확대)이라는 대당 개념으로 이해하기 위한 원리론으로 정리할 수 있겠다.

개발-안보, 권원-잠재능력의 대당 개념을 고려하면서 인간 안보론을 펼치는 게 중요하다. 달리 말하면 인간 안보론은 인간적인 개발의 잠재능력이 부족하여 안전보장의 능력을 배양(empowerment)할 수 없는 사회, 집단, 개인에게 안전보장의 권원을 부여하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 인간 안보론은 이러한 능력배양-잠재능력-권원이 없어서 불안정한 사람들을 상대로 전개되어야 한다. 인간 안보론이 적용될 공동체, 시민사회, 국가기관은 이러한 사람들의 불안전을 제거하는데 주력해야 한다. 인간적 발전의 능력배양-잠재능력-권원이 없어서 불안전한 사람들에게 안전한 삶의 연계망(safety network)을 만들어주는 것. 이것이 인간안보 차원에서 ‘안민을 통한 안보’에 성공하는 길이며, 노자, 공자, 묵자의 ‘안민을 통한 안보’와도 통하는 길이다. 이렇게 통하는 길을 줄곧 달리면 노자, 공자, 묵자가 기원했던 태평세상 대동(大同)세계의 문이 열림과 동시에 인간안보의 꽃을 피울 수 있다. 대동세계에 어울리는 인간안보의 꽃을 피우는 방향으로 안보 패러다임이 전환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인간 안보론의 적용 범주

지금까지의 논의를 종합하면서 인간안보 개념이 적용되는 범주, 분야, 대상을 파악하는 가운데 인간안보론 차원에서 ‘안민을 통한 안보’의 지평을 넓힌다.

인간 안보론이 적용되는 분야와 관련해 인간 안전보장 위원회의 2003년 보고서는 다섯 가지 분야(치안, 인도적인 구원활동, 부흥 재건, 화해 공존, 통치 능력강화)에 걸친 인간안보의 문제를 제안한다. 이 다섯 가지 분야 중 안민과 관련된 부분을 집중적으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①치안 분야=민간인의 보호(범죄 폭력과의 투쟁-지뢰제거-소형무기 회수)/외부요인으로부터의 보호(인신매매와의 투쟁) ②인도적 구원 활동(분쟁 피해자의 귀환 활동) ③부흥 재건(분쟁 피해자의 사회통합과 사회적 보호의 확립) ④화해 공존(분쟁 피해자의 존엄 회복, 사면, 경미한 범죄의 불기소) ⑤통치 능력강화(인권의 촉진-시민사회 강화-시민의 능력 구축)

위의 안민과 관련된 인간안보 분야는 분쟁과 전쟁 때문에 생기는 민중의 불안전과 관련이 있다. 따라서 인간 안보론의 가장 중요한 적용범주는 민중의 불안전 제거이다. 민중의 불안전 제거가 안민의 첩경이기 때문이다.

인간 안전보장 위원회의 2003년 보고서에 나오는 ‘인간의 안전’이라는 말을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 반대말인 ‘인간의 불안전’은 이해하기 쉽다. 이 보고서는 인간의 여러 가지 불안전에 관한 표현이 많다. 그러므로 ‘민중의 불안전을 없애는 것이 인간의 안전을 보장하는 길’이라고 생각하면서 이 보고서를 읽으면 이해하기 쉽다.

불안전을 없앤다는 것은, 자기 스스로 자신들의 불안전을 없애가는 힘을 갖는 것이다. 인간 안전보장 위원회의 2003년 보고서는 ‘능력배양’(empowerment)을 자주 강조한다. 사람들의 능력을 배양시키는 것이 국가의 안전보장 책임이라는 것이다. 이 보고서는 이러한 구조 아래에서 민중의 불안전을 없애며 이를 위한 힘을 국가가 북돋아주는 게 인간의 안전보장이라고 기술한다.

인간의 불안전 중에는 병에 걸리는 단순한 것에서부터 자연재해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것들이 있다. 인간 안전보장 위원회의 2003년 보고서에서도 인간의 불안전과 관련하여 평화구축 문제를 다룬다. 분쟁 속에서 불안전한 입장에 놓인 사람들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거론해야한다. 분쟁이 끝난 단계, 아프가니스탄, 이라크의 상황을 살펴보아야 한다. 이라크에서는 아직도 전쟁이 지속되고 있으나, 이라크 사회를 재건하는 과정에서 불안전한 상태에 놓인 사람들의 문제를 다룰 필요가 있다. 난민을 포함한 이주자의 불안전을 거론해야한다. 상호 불안전 상태에서 공통의 안전 상태로 나아가야 한다. 분쟁 아래에서 ‘공통된 인간안보’의 틀을 만들어야 한다. 분쟁 상황 속의 공통된 인간안보-시민사회의 경제활동을 연계하는 일이 중요한데, 스리랑카의 반군조직인 ‘LTTE’(타밀의 호랑이)가 지배하는 지역에서 이러한 연계구조를 발견할 수 있다. 이 지역에서 군사경제를 지원하기 위하여 생활협동조합이 활성화되고 있다. 이 지역은 싱할라 족(族)과 타밀 족(族) 사이의 상호불신이 강해 테러가 빈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용협동조합이 타밀 지역과 정부 관할 지역에서 동시에 활성화되면 상호교류가 증가되어 상호불신이 줄어들 수 있다. 분쟁지역 안의 공통된 인간안보를 이런 식으로 모색할 수 있다. 선진 공업국의 시민사회와 이주자 공동체 사이에서도 상호불신을 없애는 방식으로 공통된 인간안보를 이룰 수 있다.

김승국 평화만들기 대표

김승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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