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득 의원을 위한 변명

[문한별의 미디어 바·보] 문한별l승인2008.06.09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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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살다 내가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을 변명하는 글을 쓸 줄 몰랐다. 그 형제의 간판 보는 것도 몸서리치도록 싫어하는 사람에게 이 무슨 형벌이고. 그러나 어쩔 수 없다. 아무리 싫어하는 사람이라도 억울한 건 밝혀주고 꼬인 게 있으면 풀어줘야 하니까. 세 라비(C'est la vie).

요즘 이 의원이 욕을 바가지로 얻어 먹고 있다. 입방정 때문이다. 지난 3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 ‘제18대 국회의원 당선 축하리셉션’에서 이렇게 말한 게 화근이었다.

"…저는 지금 거리에 나와 불평을 하고 있는 촛불집회 참가자도 쇠고기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실직 당하고 일자리가 없어서 거리를 헤매는 젊은이들, 어려운 서민들, 어려운 중소기업 대표들, 그런 분들이 쇠고기 이외의 문제를 가지고도 거기에 참여하지 않았느냐. 저는 그런 두려운 마음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발언 녹취)

국민 건강과 검역 주권을 부르짖으며 거리로 나선 사람들을 할 일 없는 사람들의 허튼 짓 쯤으로 폄하한 그의 말이 알려지면서 인터넷이 발칵 뒤집혔다. 이 의원의 홈페이지는 분노한 네티즌들의 발걸음이 이어지면서 다운되는 사태가 벌어졌고, 각종 포털에는 그를 비난하는 글들이 쇄도했다. 통합민주당과 자유선진당 등 정치권도 비난행렬에 동참했다.

파장이 예상외로 커지자 이 의원은 자신의 홈페이지에 연설 전문과 행사 장면을 담은 동영상 파일을 올려 적극 해명에 나섰다. 촛불집회 참가자들을 폄하하려는 생각은 추호도 없고, 촛불집회 참석자 중에 일자리가 없는 젊은이와 고물가에 어려움을 겪는 서민, 기업경영이 어려운 중소기업들이 있을 것인 만큼 이들에게 고통을 덜어 주고 해결하자는 취지였다며 특유의 '오해신공'을 작렬한 것.

간략하게 간추린 '이상득 실언' 해프닝이 이렇다. 그런데 나는 도대체 무얼 변명하자는 것인가?

엄밀히 말하면 변명이라고 할 것도 없다. 이미 엎질러진 물, 이제 와서 되담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게다가 분명히 자신의 입으로 사람들이 오해할 만한 말을 내뱉지 않았는가 말이다. 다만 여기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실수는 분명 실순데 그에게만 너무 과하게 비난이 집중됐다는 거다. 그에게만 비난이 집중됐다니? 그럼 욕먹을 사람이 또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 그의 실언의 배후가 있다. 누군가? 바로 조선일보다. 5월 31일자 조선일보 송희영 칼럼 ‘촛불 뒤의 배후세력은 누구인가’를 보라. 거기서 송 씨는 촛불시위가 날로 확산되는 이유를 나름대로 분석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조금 길지만 소개한다.

"…지난 10여 년 동안 한국 사회에 형성된 불만 집단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나라가 온통 글로벌 경쟁 체제 속으로 휘말려 들어가면서 '힘들고 피곤하다'는 집단이 우리 이웃에 모였다. 굳이 이름 붙이자면 반(反)글로벌화 세력이랄 수 있다.

예를 들어 보너스도 못 받고, 시간외 수당도 못 받고, 유급 휴가도 없는 비정규직 노동자 숫자가 560만 명을 훌쩍 넘었다. 이 중 7할 안팎은 국민연금도, 건강보험도, 실업보험도 없는 상태에서 언제든 밑바닥 빈곤층으로 추락할 벼랑 끝에 매달려 있다. …글로벌화 추세에 적응하지 못한 계층이 희생을 거부하고 개방에 저항하는 것은 너무 자연스러운 선택이다. 게다가 반글로벌화 정서는 '지내고 보니 나만 피해자가 됐다'는 체험론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들에게 취직 통보서가 배달되고 지갑에 현찰이 들어가기 전에는, 'FTA가 되면 일자리가 몇 십만 개 창출되고 몇% 성장한다'는 두루뭉술한 논리는 쉽게 먹혀들지 않는다. …쇠고기 파동은 이 집단이 결코 분노를 감추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이들은 또 한 번의 빅뱅으로 세상이 뒤집히기를 바라는지도 모른다."

어떤가? 표현의 상이 외에 두 사람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거의 일치한다. 요즘 말로 코드가 통하고 지문이 동일하고 DNA가 일치한다. 그런데 시간상으로 송 씨의 칼럼이 앞선다. 따라서 이 의원이 송 씨의 칼럼이 실린 조선일보를 읽고 거기서 비슷한 착상을 했을 것이란 추론이 가능해진다. 이 씨 형제가 조선일보 마니아라는 건 온 세상이 다 아는 사실 아닌가.

그래서다. 이상득 의원이 실언으로 비난받아야 한다면, 그로 하여금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배후세력' 후보 조선일보는 더 큰 비난을 받아야 한다. 이 의원은 어쩌면 평생 조선일보를 애독하고 열독한 열혈독자였을 것이다. 대개 한 사람의 사상과 세계관은 그가 가까이 하는 언론매체와 무관할 수 없는 법. 이는 조선닷컴과 하니닷컴의 댓글만 비교해 봐도 쉬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신문 선택의 중요성을 다시금 확인한다.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란 말이 있듯이, '건강한 신문에 건강한 양식'이 깃든다. 올곧은 신문을 가까이 하면 그 인격이나 언행도 올곧게 되고, 왜곡된 신문을 가까이 하면 그 인격이나 언행도 왜곡된다. 이상득 의원의 발언 파문이 일깨워주고 있는 교훈이 바로 그것이다.


문한별 미디어전문기자

문한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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