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영아, 집회 가자

작은 인권이야기[48] 최미경l승인2008.06.16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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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개월 된 진영이가 낮잠에서 깨고 나면 남편이 등에 매고(업는다기보다 일명 그 ‘베이비 캐리어’는 맨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같이 나가기로 했다. 매번 겪는 거지만 아기 데리고 출동하려면 어찌나 자질구레하게 준비할게 많은지 기저귀, 물티슈, 손수건, 과자, 아기 먹는 빨대 물컵에 물 넣어서 비닐봉지에 넣고 초여름 저녁이라 좀 쌀쌀해질지 모르니 아래위로 겹쳐 입을 것 한 벌씩 더 챙겼다. 아기 데리고 우리 가족이 움직일 때 마다 남편과 나는 서로 자기가 더 준비를 많이 했다며 우기곤 한다.

차가 엄청 막히거나 아예 못 다닐 테니까, 지하철을 타기로 했다. 그나마 남편이 있으니까 대중교통 탈 생각을 쉽게 하지, 혼자선 아기 데리고 지하철 한번 타려면 타야하나 말아야 하나 수십번 생각하고 결정하고도 굳게 마음먹어야 한다. 난 아기 엄마니까 씩씩하고 튼튼해야해! 그래도 역시 힘들다. 고만고만한 아기 2명씩 데리고 다니는 엄마들은 같은 아기엄마인 내가 봐도 존경스럽다.

6시에 언니네를 먼저 만나서 종로 근처에서 밥을 같이 먹기로 했다. 진영이가 시끄럽게 돌아 다닐 테니까 구석진 곳에 방바닥에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을 잡았다. 진영이 이 녀석이 식당에서 숟가락 쥐고 돌아다니기만 하고 밥을 잘 안먹는다. 식당에서 나가는 길에 카스테라를 하나 샀다.

일행을 만나기로 한 덕수궁 쪽으로 가니 한쪽에 아기와 엄마들, 일명 유모차 부대가 모여 앉아 있었다. 그 무리에 들어갈까 잠깐 생각하다가 일행들과 함께 미리 앉은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중간 정도에 앉았다. “와 월드컵 때보다 훨씬 많이 모였네.” 계속 주변을 돌아다니는 진영이를 시야에서 놓지 않으며, 빵도 중간중간 먹였다. 한참을 지나 진영이가 지루해 하자 남편이 진영이를 데리고 잠시 돌아다니다 왔고 진영이는 누군가 손에 쥐어준 태극기를 신나게 흔들며 재밌어 했다.

아기를 낳고 얼마 안 되었을 때 남편이 한 얘기 중에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 “아기 커서 군대 어떻게 보내지? 학교 교육 어떻게 시키지? 대안학교 보낼까?” 그때 내가 한말은 “그때가 되면 지금보다 군대가 나아지지 않을까, 남북한 통일도 될 거구, 대안학교 안보내도 될 정도로 학교 교육도 좋아지겠지, 당근!”

근데 요즘 세상 돌아가는 거 보면 내가 했던 말보다 남편의 말이 현실이 될 가능성이 높겠다는 생각이 든다. 중고등학생들은 나의 20여년 전과 똑같이 여전히 0교시에 야간자율학습하고(지금 나보고 다시 ‘야자’하라고 하면 절대로 안할거다), 군대는 피하고만 싶은 곳이고, 집회 참가한 여학생은 머
리채 낚여서 시커먼 군홧발에 머리가 짓밟히고.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아토피가 있었는데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 환경이 더 나빠지고 아무 준비도 안하면 우리 아기 다음 세대는 어떻게 될까를 생각하면 무섭고 끔찍해진다.

시청에서 출발해 서대문 쪽으로 가다가 다시 시청 지나서 광화문에서 종로로 움직였다. 진영이는 밤11시쯤 되니 아빠 등에서 완전히 곯아 떨어져서 잠들었다. 일행 중에서 우리 가족만 먼저 12시쯤에 지하철 막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기 기저귀를 갈고 옷을 갈아입히고 다시 재우고 있는데 문자가 날라왔다. “광화문인데 사람들 몇 천명쯤 남아있고 물대포 막 쏘고 있어.”

아 물대포, 또 한번 날 잡아서 남편과 함께 아기 데리고 나가봐야겠구나. 유모차 아기들 때문에 물대포 쏘지 못한다는 소문도 있던데. 그나저나 유모차 ‘부대’라고 부르지 말아주세요. 이제 군대 용어 싫어요!


최미경 국제민주연대 사무국장

최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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