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인플레, 140달러 고유가 ‘휘청’
연초부터 하강 국면 빠르게 진입
경제연구소들의 고용전망 실패

‘팍스아메리카나’의 세계경제 체제가 미국발 금융위기로 위력이 흔들리면서, 세계 경제가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 전환기를 거치면서 경제중심축은 다원화될 것으로 보이나, 주요 국가들이 1980년대식 ‘플라자 합의’를 재현하면서 미국 우위의 체제를 재안정화시킬 가능성도 있어 미래를 예단하기에는 아직 어려운 상황이다. 다만 2008년 하반기에는 미국경제의 불안정성이 여전할 것이고 이것이 최소한 내년 상반기까지는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경제 질서의 종속변수에 가까운 한국경제는 세계경제의 불안정성이 야기하는 직접적 영향 아래 놓이게 될 수밖에 없다.

미국경제와 동조화(coupling)되어 있는 한국경제는 미국경제의 침체 때문에 스태그플레이션의 조짐이 하반기에 강화될 것이다. 서민경제는 2008년 하반기 저고용과 고물가 그리고 저성장의 삼중고에 시달릴 것이다. 하반기에 겪을 삼중고는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수준이 될 것이 확실하다.

중소기업은 원자재가격 상승과 생산성의 저하에다가 환율의 높은 변동성과 고금리가 더해지는 4중고를 겪게 될 것이다. 먼저 원화 환율은 하반기에도 평균 달러당 1천원 이상일 것으로 예측되며, 미국경제에 잔존한 불안요소로 인해 변동성이 심할 것이다. 또한 단기채무의 증가로 외환보유고가 점차 감소하고 있는 것도 환율방어에 악재로 작용한다. 중소기업은 환율 변동에 대응할 수 있는 여력이 없는 관계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상반기 경제상황 총평

상반기 한국경제는 인플레이션과 고유가에 휘청거렸다. 6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5%를 기록해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상황에 직면했다. 유가와 원자재 그리고 농산물가격의 급등은 타이트한 수요-공급 상황이 투기적 수요와 만나 가격 상승의 시너지(synergy) 효과를 일으켜 온 것이다.

올 초 들어서 갑자기 경기하강의 신호가 왔다는 통상의 인식과는 달리 경기선행지수는 2007년 11월부터 하강하기 시작했고, 당시부터 기업과 가계의 기대지수는 하락세가 시작되었다. 그럼에도 정책당국이 인플레이션 위험성을 제때 인식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첫째 수출대기업에만 일방적으로 유리한 고환율 정책을 유지한 점, 둘째 에너지 소비국의 시각에 편향된 해외 기관에 유가전망을 의존한 점에서 드러난다. 상반기의 인플레이션이 어느 정도 불가피했다면 이에 대비하기 위한 제도적 개선의 노력이 경주되었어야 한다.

국책 및 민간연구소들이 고용문제를 소홀히 다루었던 점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지난 연말 발표된 2008년 고용전망들은 하나같이 낙관적이었다. 이는 작년 하반기 이후부터 나타났던 상용직 고용의 증가에 근거한 것이다.

그러나 올해 들어 비정규직이 줄고 정규직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이와 동시에 비경제활동인구가 급증하면서 전체적으로는 가계소득의 증가로 이어지지 못했다. 결국 ‘고용확대 →소득증가→소비증가→다시 고용확대’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는 확립되지 않았다.

하반기 경제운용 방향 평가

정부가 지난 2일 발표한 하반기 경제운용 계획을 살펴보면, 올해 경제운용 기조를 성장에서 물가안정으로 바꾼 것은 일단 바람직하다고 평가된다. 경기하강 국면에서 무리하게 성장을 추진하는 것은 위험하기 때문이다. 서민경제의 안정화를 위해 정부가 활용할 수 있는 갖가지 정책을 총동원한 점도 바람직한 접근이라 할 수 있다.

시민사회신문DB

하반기 국내 경기에 빨간 신호가 들어오고 있다. 미국의 경제 위기에 맞물린 국내 경제의 구조적 한계에서 오는 위기란 지적이다. 특히 서민층과 자영업자들의 피해가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7월 지하도상가 강제철거에 반발하는 상인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7% 성장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에서 드러나듯 ‘성장이라는 큰 줄기’는 손대지 않고 곁가지만 가지치기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겉은 안정으로 급선회하고, 속은 747 공약에 집착하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의 하반기 경제운용 방안에서 심각하게 지적되어야 할 점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지금까지 핵심 경제정책으로 제시해 왔던 대기업집단 규제 완화, 법인세 감면 등을 계속 유지하겠다고 밝힌 점. 둘째, 중소기업의 채산성과 경영여건이 더욱 악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시점에서 이에 대한 개선 방안, 대기업의 불공정거래 근절 방안 등의 실효성이 의심된다는 점. 셋째, 공기업 및 공공부문 민영화 추진 계획, 자본시장통합법의 시행령, 은행 소유구제 관련 법 등 대형 시책을 9월 이내에 마련한다고 명확히 함으로써 국민경제 전체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정책이 졸속으로 추진될 가능성을 드러낸 점 등이다.

하반기의 스태그플레이션은 유가 및 원자재, 농산물 가격의 상승과 세계경제 침체, 금융시장의 불안이라는 외부적 요인에 의해 촉발된 경향이 크다. 그러나 한국경제가 일본, 독일 등 ‘제조업 강국’이나 브릭스(BRICs) 등 ‘신흥시장국’에 비해 고용악화, 물가상승과 경기침체의 압력이 더욱 강하게 작동하는 것은 자체의 구조적 요인의 측면이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대외의존적 경제구조의 취약성, 불완전고용의 확대 그리고 고통분담을 위한 사회안전망의 미비 때문에 외부의 불안요소는 곧바로 서민경제의 어려움으로 전화되고 있다.

수출대기업에 유리한 고환율 정책이 사실상 실패로 평가받고 있고 공기업 민영화 정책이 여론의 반발을 사고 있는 것은 ‘시장만능주의’가 현재의 정치경제적 환경 속에서 적절하지 않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정책 실패의 원인을 국민의 무분별한 반대로 치부한다면 더 값비싼 경제외적인 비용을 치르게 될 것을 정부는 명심해야 한다.

“영세 서비스업 위기 맞을 듯” [고용률 하락과 청년실업] 상반기 고용률은 전년대비 0.2%p 하락했다. 이러한 추세가 이어지면서 하반기 신규취업자는 상반기의 19만 명을 밑도는 17만 명 수준으로 예상된다. 내수경기가 빠르게 위축되면서 소비와 투자 심리가 크게 위축되는 결과로 고용창출력이 하락한 것이다. 올해 1분기부터 이미 재고가 증가세로 들어선 것도 하반기 고용확대를 낙관할 수 없는 이유다. 상반기 고용률 하락은 청년취업자의 감소가 이끌었으며, 여기에 더해 임시·일용직이나 비정규직 그리고 자영업자와 무급가족종사자 등 노동빈곤층의 취업자 하락이 결정적이었다. 청년고용 감소를 주도한 것은 대기업들이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대기업들은 경력직 채용의 비율을 높이면서 사회초년병의 채용을 꺼리고 있다. 지난 상반기 대기업들이 사상 최고의 실적을 거둔 것을 감안했을 때 청년실업은 기업 경기와 무관한 것으로 판단되며, 대기업들의 이러한 행태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일환으로 이해하는 것이 오히려 정확한 진단이다. 더구나 하반기에는 대기업들의 고용기피가 중소기업으로까지 이어질 공산이 크다. 결국 청년실업에 이어 저소득노동자의 일자리도 심각한 도전을 받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상반기 취업자가 가장 크게 감소한 산업부문은 농림어업(5만8천명)과 부동산 및 임대업(4만 7천명)이었다. 하반기에는 영세서비스업 종사자가 몰려 있는 도소매업과 숙박음식업에 주목해야 한다. ‘스태그플레이션’이 강화되면 ‘비’상용직들의 비중이 대단히 높은 도소매업과 숙박음식업의 고용부터 직격탄을 맞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특히 대형 할인업체가 시장점유율을 지속적으로 확대하면서 도소매업체는 지난 2003년부터 줄곧 취업자가 하락해 왔다. 도소매업의 경우 아직도 약 35%가 자영업자이므로 이들이 퇴출된다면 더 이상 갈 데가 없어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고환율 유지 물가에 악영향 [소비자물가상승률 5.5% 예상] 하반기 물가 상승률은 5.5% 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상반기 유가와 원자재 가격의 상승 여파가 하반기 소비자 물가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이며, 최근 농산물 가격을 시작으로 하반기에는 개인서비스업 요금, 뒤이어 공공요금의 인상 압력이 강하게 작용할 것이다. 하반기에 미국경제가 침체 경향을 보이게 되면, 유가는 150달러(미 서부 텍사스산 중질유 기준) 근처에서 변동하는 수준에 그치겠지만, 5월에 44.5%를 기록한 바 있는 수입물가의 인상률이 하반기에도 지속될 것이고, 이미 근원 인플레이션율(석유제품과 농산물을 제외한 인플레이션율)이 4%를 넘어섰기 때문에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 미만으로 하락할 가능성은 대단히 낮은 것으로 전망된다. 주요 통화가 달러화 대비 강세를 보이고 있음에도 유독 원화만 약세에 있어 물가 상승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상반기 달러 약세 기조 때 정책당국은 고환율 정책을 사용했기 때문에 환율 통제의 수단을 이미 상실한 상태다. 하반기 원화 환율은 달러 약세에도 불구하고 1천원대 이상에서 형성될 것으로 예측된다. 미국경제가 침체에 들어섰으나, 한국경제의 불안정성도 동시에 커지고 있기 때문에 보다 안전한 자산인 달러 수요는 계속 유지될 것이다.

수출은 호조, 성장률은 둔화 [수출과 중소기업] 상반기는 수출 호조에 힘입어 생산이 증가되었다. 하반기에는 선진국의 성장률 둔화로 생산이 다소 감소하겠으나, 개도국과 신흥시장을 중심으로 수출은 여전히 높은 증가세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산업연구원(2008)의 분석에 따르면, 가전을 제외한 IT 제조업군이 수출을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비IT 분야에서는 조선과 철강, 일반기계의 생산이 높은 증가세를 지속할 전망이며, 조선은 이미 충분한 건조물량이 확보되어 있고 일반기계는 수출과 내수 수요가 모두 살아 있는 것으로 예상된다. 10대 주력산업의 하반기 수출 증가세는 14.3%로 전망됨에 따라 대기업의 생산성 증가는 계속 호조를 보일 것으로 전망되나, 이에 반해 상반기부터 등락을 거듭해온 중소기업의 생산성 전망은 불투명하다. 지난 6개월 동안 중소기업의 평균가동률은 70% 전후의 2%p 내외에서 변동해왔으며, 이에 따라 대기업과의 생산증가율 격차가 10%p를 상회하는 수준이 지속되고 있고 전체 제조업에 대한 중소제조업의 생산성 증가기여율이 15.2%p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하반기에는 물가안정을 최우선하는 기조에 따라 중소기업 대출금리도 오를 전망이다. 이 경우 중소기업의 경영여건은 더욱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이상동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연구원

이상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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