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언어’와 시민사회의 고뇌

[편집인 레터] 김주언l승인2008.07.14 11:08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해동(解凍) 광우(狂牛)가 나오샤 일마다 천벌(天罰)이시니/원성(怨聲)이 동행(同行)하시니.’

다음 아고라에서 누리꾼들이 벌이고 있는 ‘2MB문학상’에 응모한 ID ‘이민석’의 ‘명비어천가’란 작품이다. 이 작품을 출품한 누리꾼은 ‘얼었다 녹은 미친 소가 나와서 하는 일마다 천벌을 받으시니/원성이 따라다니시니’라고 친절하게 해설까지 붙여놓았다. 물론 원문(해동(海東) 육룡(六龍)이 나오샤 일마다 천복(天福)이시니/고성(古聖)이 동부(同符)하시니)까지 함께 붙여 놓았다. 누리꾼들의 댓글 놀이터인 아고라 게시판 ‘2MB문학상’에는 수십 편의 시와 콩트, 수필, 시조, 격문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이 응모했다.

한 편만 더 감상해보자.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를 빗대 지은 문학성(?) 높은 ‘내 눈을 감기세요’란 제목의 시이다. ‘내 눈을 감기세요/그래도 나는 비리를 볼 수 있습니다/내 귀를 막으세요/그래도 나는 당신의 폭정을 들을 수 있습니다/발이 없어도 시청에 갈 수 있고/입이 없어도 당신의 탄핵을 부를 수 있습니다/내 팔을 꺾으세요/나는 당신을 촛불로써 끌어낼 것입니다/내 심장을 멈추게 하세요/그럼 나의 뇌가 민주주의로 고동칠 것입니다/당신이 나의 뇌에 불을 지르면/그 때는 당신을 미친 소 내장 속에 실어 나르렵니다.’(ID 와유)

비록 고전을 패러디한 작품이지만 원작 못지않게 누리꾼들의 상상력과 미적 감각이 빛을 발한다. 이렇듯 인터넷을 중심으로 누리꾼들이 빚어낸 2008년의 촛불문화제는 20년 전 독재정권 당시의 목숨을 건 시위와는 근본을 달리한다. 최루탄과 화염병이 난무하던 당시의 민주화투쟁은 시위지도부의 지휘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그러나 촛불집회에는 지도부가 없다. 아니 지도부를 거부한다.

참여군중도 달라졌다. 독재정권 당시에는 학생들과 운동권이 주도했지만, 촛불집회에는 유모차에 탄 아기와 애완견까지 동반한 가족, 인터넷의 화장품 카페에서 모인 젊은 여성, 요리 동호회의 주부, 중고교생, 예비군복을 입은 청년 등 누구의 지시도 받지 않는 자발적 참여가 주를 이루고 있다.

시위현장의 구호도 달라졌다. 과거에는 ‘독재타도’가 주를 이뤘으나 이제는 달라졌다. 중학교 2학년생은 손 팻말에 “이 한 몸 다 ‘받’쳐 한 대 ‘쥐박’고 싶‘읍’니다”라는 구호를 써서 들고 다니고, 경찰이 물대포를 쏘면 ‘온수, 온수’라며 비누를 달라고 외친다. 전경이 강제로 연행하려면 ‘닭장차 투어’라며 자진해 전경차에 오르자고 한다.

이러한 변화에 대해 문학평론가 고명철 씨는 “낡고 고루한 관변언어를 태우는 ‘촛불의 언어’”라고 명명한다. 과거의 언어는 폭압적 반민주화에 대한 완강한 저항의 언어인 ‘화염병의 언어’, 즉 ‘부성의 언어’였다면 ‘촛불의 언어’는 화염병의 언어가 추구하던 민주주의적 가치를 향한 염원을 공유하되 수행의 차원에서는 상반되는 ‘모성의 언어’라고 분석했다.

‘모성의 언어’는 기발하다. 지난 6월 10일 촛불집회 때 경찰이 광화문 네거리에 세웠던 ‘명박산성’에 대한 해석은 이를 잘 말해준다. 다국어판 인터넷 백과사전인 ‘위키백과’에도 게재된 이 해석은 의표를 찌른다. ‘광종(狂宗)(연호:조지) 부시 8년(戊子年)에 조선국 서공(鼠公)이 쌓은 성으로 한양성의 내성이다. …이는 당시 서공의 사대주의 정책과 삼사(三司:조선, 중앙, 동아) 언관들의 부패를 책하는 촛불 민심이 서공의 궁으로 향하는 것을 두려워 만든 것이다….’

이러한 시위문화의 변화에 대해 학자들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 지 당황하고 있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현상에 대해 설명할 수는 있지만, 이러한 변화가 앞으로 한국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깊이있는 분석이 없다. 이를 들여다보는 정치권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고작 배후론이나 색깔론, 괴담론 등의 ‘관변언어’를 놓고 티격태격하고 있을 뿐이다.

지난 7월5일 59번째 촛불문화제에는 수많은 'V'들이 나타났다. ‘매트릭스’의 워쇼스키 형제가 만든 영화 ‘브이 포 벤데타’에서 모티브를 따온 한국의 ‘V'들이 신세계 앞 분수대 위에서 불꽃놀이를 펼치는 장면은 시위대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완벽한 통제사회에서 ‘V’라는 가면 속의 영웅이 통제사회의 억압을 드러내고 침묵하던 모든 시민이 ‘V'가 되어 시민권을 회복한다는 설정을 재현해낸 것이다.

시민사회단체를 이끄는 지도자들에게는 이제 수많은 시민을 이 영화의 ‘V'처럼 만들어 내야 하는 과제가 안겨졌다. 운동방식과 아젠다 설정을 어떻게 변화시켜야 시민이 자발적으로 ‘V’자 가면을 쓰고 시민권 회복을 위해 거리로 쏟아져 나올 것인지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그동안 일부로부터 ‘시민없는 시민운동’이라는 비난을 받았던 이들은 2008년의 거대한 촛불의 흐름 속에서 시민과 함께 하는, 시민 속으로 파고드는 새로운 시민운동을 고민해야 한다. 이제 시민사회의 화두는 ‘고뇌’이다.


김주언 본지 편집인

김주언  

<저작권자 © 시민사회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주언의 다른기사 보기

인기기사


여백
시민사회신문 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08288 서울특별시 구로구 새말로 93, 신도림태영타운상가2동 B105  |  대표전화 : 02-3143-4161  |  팩스 : 02-6737-1115  |   ingopress@ingopress.com
등록번호 : 서울 다 10706  |  등록일자 : 2013년 8월 26일  |  회장·논설주간 : 강상헌  |  발행·편집인 : 설동본  |  편집국장 : 양병철
후원계좌 : 국민은행 7788-01-04-375819 (시민사회신문)  |  청소년보호책임자 : 설동본
Copyright © 2007 시민사회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