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초부터 시작된 촛불집회의 거대한 자발적 시민행동은 우리사회 전체를 놀라게 했다. 집권정치세력도 망연자실하고 촛불시민 자신도 놀라운 현실이었겠지만 어쩌면 가장 큰 충격을 받은 이들은 시민단체나 노동단체와 같은 조직을 중심으로 운동을 추구해온 활동가들이었을 수 있다. 조직적 동원에 익숙했던 이들에게 그야말로 자발적인 일반시민의 완전히 새로운 참여방식은 놀라운 현상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유연한 자발집단의 ‘제4 결사체’
촛불집회는 두 가지 측면에서 크게 바뀐 사회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첫째는 광우병 쇠고기 문제라고 하는 새로운 이슈의 측면에 주목할 수 있다. 정치권력과 시장권력의 민주화를 주도했던 시민단체들로서는 광우병 쇠고기문제는 시민사회의 정치적 욕구가 바뀌고 있음을 알리는 것이었다.
정치적 억압과 계급적 빈곤이 연대를 가능하게 했던 산업사회의 저항이슈가 종료되고 일상적 삶의 안전을 위협하는 위험 요소에 대한 ‘공포’가 새로운 연대와 시민행동을 가능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기존의 시민단체들이 다루던 이슈는 제한적이지만 새로운 이슈들은 사적인 것을 포괄하는 광범한 욕구의 저수지를 이루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이슈가 촉발되는 지점 또한 예측하기 어렵다
둘째는 거대한 시민행동을 가능하게 한 공론화의 과정과 동원의 방식에 주목할 수 있다. 최근까지 시민사회의 주요조직들이 주도하는 운동은 이해당사자들 중심의 참여에 제한되는 경향이 있었다. 1인 시위가 주요한 시위방식으로 확산된 것은 무엇보다도 시민동원의 한계 탓이 크다.
그러나 이번 촛불집회는 인터넷 공론장을 기반으로 하는 ‘전자적 대중’이 토론방, 카페, 블로그 등의 회원조직을 통해 끊임없는 토론을 진행하면서 오프라인의 거대한 시민 직접행동을 주도했다. 전자적 대중이 만드는 다양한 회원조직들은 이슈와 규모, 활동공간의 제약이 없는 유연한 자발집단의 특징을 갖는다는 점에서 근대사회의 조직관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제 4의 결사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새로운 저항 전선이 가시화되는 과정
온라인의 토론과 오프라인의 행동을 넘나드는 제 4 결사체의 성찰성은 촛불시민을 고도의 자기조절 능력을 가진 ‘이성적 군중’으로 만들었다. 나아가 비조직적이고 자발적인 시민참여는 다채로운 문화제와 유모차 시위와 같은 평화롭고도 다양한 축제적 시위방식을 가능하게 했던 것이다.
광우병쇠고기 반대 촛불집회의 이러한 특징은 지난 몇 십 년에 걸쳐 우리사회가 경험한 민주화, 정보화, 나아가 탈근대적 사회변동을 반영하고 있다. 따라서 시민운동의 맥락에서 본다면 이 같은 새로운 이슈의 등장과 공론화 과정, 나아가 시민동원의 방식은 한국의 시민운동이 조직적 시민운동의 주기에서 ‘탈조직적 시민운동’의 주기로 전환하고 있음을 알리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이제 우리사회의 시민운동이 계급적 기반과 이념적 결속이 해체되면서 새로운 저항의 전선이 가시화되는 과정에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시민단체 전문성과 조직성은 여전히 유효
그러나 탈조직적 시민운동의 주기가 조직운동의 무용성으로 확대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도 강조되어야 한다. 오히려 촛불집회와 같은 비조직적 거대 시민행동은 일회성의 한계와 함께 목표달성이 가시화되지 않는 경우 심각한 딜레마를 경험할 수도 있는 것이다. 장기적이고 일상적인 정책이슈에 관해서는 전문성과 지속성을 갖춘 조직화된 시민단체의 역할이 여전히 유효하다.
문제는 촛불의 바다를 향해 정부가 개방되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조직화된 시민단체 또한 제 4의 결사체를 향해 열려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우리시대 새로운 사회통합의 과제이기도 하다.
조대엽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조대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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