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평화’를 꿈꾸다

누군가가 내 삶의 목표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나는 주저 없이 항상 ‘세계 평화’라고 답하곤 했다. 중학교 3학년 때, 세계 청소년 캠프에서 그 작은 가슴에 인종차별이라는 상처를 입은 뒤로 인종차별을 비롯한 세계적인 문제를 해결하여 세계 평화를 이루는 원더우먼이 되고 싶었다.

그 후로 약 5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더 이상은 막연히 원더우먼이 되길 바라는 철없는 아이가 아닌 ‘88만원 세대’ 에 속해 슬슬 앞날을 걱정하는 대학교 3학년이 되었다. 여전히 세계 평화라는 열망은 가슴속에서 자리잡고 있지만 각박한 서울살이를 하며, 취업난에 허덕이는 선배들을 보며 조금씩, 조금씩 다른 것들로 퇴색되어 가고 있었다.

사실 인권연대에 인턴 지원을 하기 전에 나 또한 여느 대학생들처럼 우리나라의 유명한 기업에 인턴을 지원했었다. 딱히 그 기업이 좋아서 지원을 한 것이 아니라, 단지 그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하여 지원을 한 것이다. 그저 그런 생각에 지원을 했는데 운 좋게도 1, 2차를 통과하고 적성검사만을 남겨두었다. 적성검사를 보러 가기 전 날, 촛불들을 무참히 짓밟는 전의경의 동영상을 보면서 가슴깊이 끓어오르는 ‘무언가’가 내 맘속에서 잠자코 있던 ‘세계 평화’에 대한 열망을 깨웠다. 그래서 결심했다. 이번 여름 방학에 기업에서 일을 하기 보다는 사회 속에 직접 뛰어들어 아직 튼튼한 내 젋음을 마음껏 발산하기로. 특히 촛불 시위를 통해 인권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깨닫고 인권에 대해 좀 더 배우고자 인권연대에서 인턴을 하기로 했다.

한 달 반 동안 인턴을 하면서 정말 많은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일을 했지만 그 중 이 지면을 빌어 꼭 소개하고 싶은 두 가지 활동이 있다. 하나는 ‘프리 버마 캠페인’이고 다른 하나는 ‘대학생 인권학교’이다.

프리 버마 캠페인은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버마 분들과 함께 매주 화요일 마다 버마 대사관과 종각역 근처에서 실시하고 있으며 참여를 원하는 시민은 누구나 함께 할 수 있다. 폭염주의보가 내린 무더운 날, 타는 목마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한 마음이 되어 “FREE FREE BUMA BUMA" "버마의 민주화는 아시아의 평화다”를 외쳤다. 처음에는 이렇게 외치는 것 자체가 익숙하지 않아 목소리를 다 내지 못했던 내가 어느 순간부터는 직접 확성기를 들고 버마 대사관을 향해 “군부독재 청산!”을 홀로 외치기도 했다. 캠페인을 하다보면 이러한 방식으로 어느 세월에 민주화를 이루나 하는 답답한 마음이 들었지만 우리나라가 서울의 봄을 맞이했듯이 버마 또한 언젠간 민주화의 봄을 이룰 것이라 생각한다.

다음으로 대학생 인권학교는 인권연대에서 처음으로 실시했던 강좌였다. 인권의 개념부터 우리가 애써 외면했던 성적 소수자와 노동자들의 인권까지, 3일이라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앞만 보고 달려왔던 내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었고 세상을 보는 눈을 한층 키울 수 있었다.

대학생 인권학교의 후속모임으로 함께 수업을 들은 친구들과 인권연대 식구들과 남영동 대 공분실 견학을 갔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는 어둡고 칙칙한 분위기를 한층 더 고조 시켰고 원형 계단을 한층 한층 올라 박종철 열사의 조사실에 도착했을 때, 그가 받았을 고통에 가슴이 아팠다. 그의 뜨거운 가슴과 정신이 지금의 대학생들에게 잊혀져 가는 것만 같아 화가 나기도 했다.

견학을 마치고 우리는 대학생 인권연대라는 이름으로 지속적인 모임을 갖기로 하여 매주모여 인권과 관련한 영화도 함께 보고, 토론도 하며 버마 민주화를 위한 프로젝트도 함께 하기로 했다. 막 조직된 모임이라 시행착오도 있지만 학생들의 자발적인 모임이기에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단단한 모임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이 두 가지 활동 외에도 수요 대화 모임과 교사 인권 강좌를 통해 인권에 대한 지식을 넓힐 수 있었고 전 의경 제도의 문제점에 관한 토론회와 복무 전환 신청과 양심선언을 한 전 의경들을 지켜보면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시민단체와 활동가들의 역할이 참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촛불집회 중 연행된 안진걸 씨의 편지를 타이핑하고 조계사에 있는 국민대책위를 방문하면서 열악한 상황에서도 절대 쓰러지지 않는 그들이 있기 때문에 시민들이 발 뻗고 잘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평화 인문학을 들은 재소자들의 소감문과 편지를 읽으면서 이들을 포기하지 않고 좋은 길로 인도하시는 시민단체 활동가들과 강사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이제 인턴 활동이 삼일 정도 남았다. 한 달 반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한층 더 성숙해진 나를 발견 할 수 있었고 내가 일한 것에 비해 너무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달은 것 같아서 미안하고 감사하다. 더운 날씨임에도 꺼지지 않는 촛불처럼, 뜨거운 가슴을 가지고 지금의 활활 타오르는 젊음을 간직하며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