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라의 번뜩림, 그 여유

[책 권하는 사회] 백운광l승인2008.09.29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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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읽는 이를 얽어두지 않는다”
한시를 되새기는 여운, 운율과 의미


요즘 인터넷에 한시 형식을 흉내 낸 이상한(?) 글이 유행流行이다. 우연偶然한 기회에 접한 그 글을 보며 잠시 웃다가 새삼스런 생각이 들었다. 한글로 써 있으면 눈길 한번 주지 않았을 글인데 한자漢子로 써 있단 이유로 별스러운 재미를 주는 이유가 뭘까?

한자는 우리 일상 속에 녹아있으면서도 괜히 낯설고 불편한 글자이다. 그래서 한자를 능란能爛하게 사용하는 사람들은 대단해 보이고 어느 정도 지식이 있어 보인다. 여전히 한자가 갖는 권위에 주눅 든다. 그래서 재미있나 보다. 한자라는 딱딱하고 어려운 글자를 가지고서 언어유희言語遊戱 하는 걸 보며….

박장대소拍掌大笑하다가 한시가 주는 묘미妙味를 만끽滿喫하고 싶었다. ‘정민 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이야기’를 손에 잡은 이유이다.

시는 짧아서 적혀있는 글자를 끝까지 보기는 쉽다. 하지만 마음에 여유가 없으면 그 아름다움을 느끼기 어렵다. 소설이 내용과 구성에서 재미를 불러일으켜 빠져들게 하는 맛이 있는데 비해 시는 찰나刹那의 번뜩임에 몸이 움찔하지 않으면 마음에도 머리에도 남아 있지 않는다.

한시는 둘 다 어렵다. 한자에 익숙하지 않다보니 끝까지 보기도 쉽지 않고, 시이다 보니 아름다움을 느끼기도 어렵다. 그래서 한시는 쉽게 달려들기 어렵다. 학창시절 한문 시간에 가끔가다 느껴봤던 묘미가 유혹을 하지만, 부담을 느끼면 시가 들어오지 않던 경험이 자꾸 방해한다. 그래서 한시에 익숙해지려면 누군가의 이끎이 필요하다.

‘정민 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이야기’는 자기 아이에게 들려주는 한시이야기이다. 그러다보니 한시의 세계에 부담없이 다가가도록 한다. 그리고 한시를 계기로 해서 시의 세계에 빠져들게 한다. 정민 선생님이 알려 주길 시인은 드러내 놓고 말하지 않는다. 시는 노골露骨적이지 않다. 그래서 시에 담겨진 시인의 ‘그 순간’을 발견하는 재미를 가르쳐 준다. 그 재미에는 여지餘地가 많다. 그래서 시인은 읽는 이를 얽어두지 않는다.

獨倚山窓夜色寒(독의산창야색한) 홀로 산창에 기대서니 밤기운이 차가운데
梅梢月上正團團(매초월상정단단)매화 가지 끝에는 둥그렇게 달이 떴다
不須更喚微風至(불수갱환미풍지)살랑살랑 미풍을 기다릴 것도 없이
自有淸香滿院間(자유청향만원간)집 안에 맑은 향기가 절로 가득하다.

퇴계 이황 선생의 ‘陶山月夜詠梅’(도산 달밤에 핀 매화)란 시라 한다. 한글은 정민 선생님의 역시譯詩이다. 매화 향에 실어 보낸 봄밤의 수줍은 서두름이 물씬 풍긴다.

‘정민 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이야기’로 한시에 다가가니 더 깊은 정취에 빠지고 싶은 유혹이 든다면 ‘한시미학산책’을 권한다. 이 책은 더 많은 한시와 그에 대한 정민 선생님의 친절한 안내가 실려 있다.

近來安否問如何(근래안부문여하)근래에 안부는 어떠신지요
月到紗窓妾恨多(월도사창첩한다)사창에 달 떠오르면 사무치는 그리움
若使夢魂行有跡(약사몽혼행유적)속 넋이 만약에 자취 있다면
門前石路便成沙(문전석로변성사)문 앞의 돌길이 모래로 변했으리.

이옥봉의 ‘贈雲江’(증운강) 시라 한다. 역시 한글은 정민 선생님의 역시이다. 무어라고 한마디 걸치기가 두렵다.

‘한시미학산책’에 특히 자주 등장하는 시인이 광해군 시절 사람인 권필이다. 그의 ‘戱題’(희제) 시를 정민 선생님의 역시와 함께 보자.

詩能遺悶時拈筆(시능유민시념필)는 고민 걷어가 때로 붓을 잡았고
酒爲?胸屢擧?(주위요흉누거광)술은 가슴 적셔줘 자주 잔을 들었지.

옛 사람의 서정抒情이 여전히 ‘지금’(只今)이다. 고민 걷어갈 시는 토해내지 못하고 가슴 적셔줄 술만 부으니 번민이 가득하다. 언어유희에라도 눈길이 가는 또 하나의 이유이다.

한시를 이용한 재담才談으로는 김삿갓의 書堂乃~(서당내~)를 빼놓을 수 없다. 정민 선생님은 김삿갓의 장난 시를 보며 말한다.

“김삿갓의 장난 시를 대할 때마다 필자가 느끼게 되는 감정은 서글픔과 씁쓸함이다… 그인들 이런 시를 짓고 싶었으랴만, 그로 하여금 이런 장난질에 몰두하게끔 강요한 현실이 역으로 희대의 민중시인을 낳았다는 이 역사의 아이러니는 어떻게 이해해야할까.”(한시미학산책 중)

제발 한시 가지고 장난 좀 그만하게 해줬으면 참 좋겠다.

백운광 두리미디어 편집주간

백운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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