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옌데와 노무현, 두 대통령의 자살

[이지상의 사람이 사는 마을] 이지상l승인2009.06.01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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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옌데

1973년 9월 11일 오전 살바도르 아옌데는 칠레 군부 내의 모든 장교들이 쿠데타 군에 가담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조용히 이생에서의 마지막 연설을 준비 합니다.

바로 한달 전 자신이 군 총사령관으로 임명한 피노체트 장군이 쿠데타 군의 수장이 되어 모네다궁(칠레의 대통령궁)으로 탱크를 몰고 진격해 오고 있다는 소식에 아옌데는 자신이 추구해 왔던 이상적 사회주의의 꿈을 접어야 한다는 것을 직감 합니다. 부인과 두 딸, 자신을 보위하던 정부군. 경찰병력을 대통령 궁으로부터 피신시키고, 외롭고 쓸쓸했던 3년 동안의 집권기간을 떠올리며 차근차근 연설문의 내용을 채워갑니다.

그는 선거를 통해 집권한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정부인 칠레 제29대 대통령이었습니다. 집권 후 그는 사회주의를 향한 칠레의 길(La via chilena al socialismo)이라는 자신의 공약을 추진해 나갔습니다. 광산과 은행 그리고 운송수단을 국유화하고 칠레의 빈민 노동자들의 안정적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이 일차적 목표였습니다. 교육과 의료부분의 혁신을 단행하려했고, 굶는 어린이에게 최소한 하루 1리터의 우유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노력은 번번이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다수당 이었던 보수연합(기독교 사회당과 국민당)은 행정부가 제출한 법안의 전부를 부결시켰습니다. 아옌데가 임명한 장관들은 재임기간 한 달을 넘기지 못하고 해임 당했습니다. 의회는 행정부의 장관 14명을 한꺼번에 해임하기도 했습니다. 대규모 사업의 국유화를 반대하는 세력들은 파업으로 맞섰고, 그로인해 물가는 치솟았습니다.

군부는 수시로 으르렁대며 정권을 위협했습니다. 그를 지지하는 노동자, 농민들의 시위가 모네다 궁 옆의 광장에서 매일같이 열렸지만 매판자본과 미국의 사주를 받은 군부 또 매판자본에 매수된 노동자들의 반정부 시위와 파업도 하루가 다르게 강도를 높여 갔습니다. 그렇게 3년의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아옌데 정부가 공약하고 실현하려 했던 수많은 정책들은 부르주아 기득권 세력의 반대에 부딪혀 휴지조각으로 변해 갔습니다. 급기야 1973년 3월 선거에서 의회 다수당의 지위를 아옌데 정부에 넘겨준 보수야당은 정부전복 시나리오를 실행해 옮깁니다. 그해 6월 제1차 쿠데타가 실패한 이후 더욱 두터워진 미국의 적극적 지원 하에 1973년 9월 2차 쿠데타를 일으킵니다.

아직 쿠데타군이 장악하지 못한 국영방송 마가야네스를 통해 아옌데의 떨리는 그러나 당당한 연설이 시작 됩니다. 그는 쿠데타군의 해외 망명 제의도 거절하고 지금까지 자신을 지지해준 칠레민중의 영원한 대통령으로 남을 결심을 합니다.

“이번이 제가 여러분에게 말하는 마지막이 될 것입니다. 곧 마가야네스 라디오도 침묵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용기를 주고자 했던 나의 목소리도 닿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나는 민중의 충실한 마음에 대해 내 생명으로 보답할 것입니다. 칠레 만세! 민중 만세! 노동자 만세! 이것이 나의 마지막 말입니다. 나의 희생을 극복해내리라. 역사는 우리의 것이며 인민이 이루어내는 것입니다. 언젠가는 자유롭게 걷고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할 역사의 큰 길을 인민의 손으로 열게 될 것입니다.“(아옌데의 마지막 연설 중)

20세기를 관통하는 가장 훌륭한 연설중의 하나로 손꼽히는 이 연설을 뒤로하고 살바도르 아옌데는 반란군의 총탄이 빗발치는 모네다 궁의 대통령 집무실에서 숨진 채 발견 되었습니다 그의 가슴에는 피델 카스트로로부터 선물받은 AK-47소총이 얹혀져 있었습니다

#노무현

그는 꿈이었습니다. 이루지 못한 것. 이루지 못할 것을 그저 꿈으로만 소유하고 있는 모든이들에게 ‘희망’의 존재가 사람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몸소 보여준 사람이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추모하는 걸개그림에 추모글을 적고 있는 한 학생.

대한민국 사(史)에서 가장 위대한 연설로 손꼽을 만한 2002년 제16대 대통령 후보시절의 연설은 ‘민주주의’의 의미를 깊이 각인케 했고, 그와 함께 꿈꾸던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울렁이게 했습니다.
“권력에 맞서 당당하게 권력을 한번 쟁취하는 우리의 역사가 이루어져야 만이 이제 비로소 우리의 젊은이들이 떳떳하게 정의를 이야기 할 수 있고 떳떳하게 불의에 맞서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낼수 있다.”(노무현 전 대통령의 후보시절 연설 중)

최소한의 밀월기간을 두었던 국민의 정부와는 달리 그는 그를 반대했던 보수 야당과 언론의 조롱을 재임 초기부터 받아야 했습니다. 마치 “머슴이나 해야 할 놈이 상전노릇 한다”는 식으로 면전에서 모욕을 주기 일쑤였습니다. 취임 후 첫 국회연설에서 보인 보수 야당의 태도는 다섯 살 어린 아이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대통령을 맞이하는 예우는 고사하고 거의 뒤로 누운 듯 인터넷이나 뒤지고 있던 거만함 속에서 그들의 불편한 속내를 읽을 수 있습니다. 이후 그들은 스트라이커 부대의 훈련에 항의 하는 학생들의 시위를 못 막았다는 이유로 행정자치부 장관을 해임했고, 특별한 이유 없이 감사원장의 임명동의안을 부결시켰습니다. 검사들의 조직적인 반란에 발맞추어 언론은 검찰도 장악하지 못하는 아마추어 정권이라고 비아냥댔습니다. 국회에서 그는 “놈무혀니”로 통했고 그를 대통령이라 부르는 야당의원은 거의 찾아보기 어려울 지경이었습니다. 그리고 재임 1년이 조금 지난 시점에서 그는 탄핵 당했습니다.

그를 탄핵했던 세력은 김구, 여운형을 암살했고 진보당 당수 조봉암을 사형시켰으며 민족일보 조용수와 조국의 분단을 생살 찢기는 아픔으로 끌어안았던 이수병, 도예종, 하재완, 여정남 같은 젊은이들을 죽인 사람들이었습니다. 80년 항쟁의 한복판에 있던 시민군을 도살하고 87년 박종철과 이 한열을 죽인 사람들도 그들이었습니다.

한때 ‘노무현 탓 놀이’가 유행할 정도로 그를 조롱하는 사람들도 점점 많아져 갔습니다. 등산하면서 숨이 턱까지 차올라도, 출근길 지하철에서 발이 밟혀도 노무현 탓이었습니다. 교통위반 딱지를 떼어도 노무현 탓, 즐겨보던 보수신문이 제 시간에 배달이 되지 않아도 노무현 탓이었습니다. 맥주 집, 갈비 집에 사람들이 넘쳐나도 늘 경제가 어렵다고들 얘기했고, 금강산 관광이 활성화되고, 개성공단이 만들어져 남북 화해분위기가 무르익을 때도 너무 퍼주기만 한다고 불평해댔습니다. 자기가 키우는 강아지의 이름을 노무현이라고 지었다며 킬킬대는 이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애초 그와 함께 새 세상을 꿈꾸었던 많은 사람들이 떠나고 여전히 그를 지지했던 이른바 ‘노빠’는 이 사회의 불가촉천민이 되어 말 한마디 하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불운한 대통령 그러나…

아옌데 대통령을 잃은 칠레는 이후 18여년 동안 ‘피의 도살자’라 불리던 피노체트의 독재에 신음해야 했습니다. 쿠데타를 감행한 후 일주일동안 약 3만여 명의 시민이 어디론가 끌려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중에는 아옌데 민중정부의 성공을 위해 시위의 현장을 누비던 노래하는 사람 ‘빅토르 하라’도 있었습니다. 피노체트 집권기간 동안 약 10여만명이 조국을 등지고 망명했고, 30여만명이 죽거나 감옥에 갇혔습니다. 칠레의 이 암울했던 상황은 후일 파트리시오 구즈만 감독의 ‘칠레전투’라는 다큐를 통해서 세상에 생생이 전해집니다. 아옌데의 딸 이사벨 아옌데는 <영혼의 집>(The house of spirit)이라는 제목의 소설을 출간했고, 메릴 스트립과 안토니오 반데라스가 주연한 영화로도 만들어 졌습니다.

칠레 민중은 피노체트집권 이후 28년 만에 다시 새로운 사회주의 정부를 만들었고, 독재자 피노체트는 90평생의 절반을 누군가의 저주를 받으며 살아야 했습니다.

‘바보 노무현’의 서거 소식을 들은 곳은 낙동강 지류인 영주 내성천의 강 언덕 이었습니다. 4대강을 살리겠다고 외쳐대는 현 정부의 거짓말을 애써 확인하려고 내려간 곳이었습니다. 그곳은 다시 살려야 할 만큼 죽어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영원히 간직하고 싶을 만큼 아름다운 금 모래톱과 여울이 넘실대는 곳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대통령의 서거소식을 들으며 그만 무릎이 꺾이고 말았습니다. 그는 꿈꾸는 사람이었습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 언제나 싸울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1981년 부림 사건을 맡으면서 지금까지 그는 늘 싸워왔던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을 왕으로 생각하거나 그의 측근쯤으로 여겨왔던몇 안되는 부르주아 세력의 반란에 맞서 민중의 질서가 이 세계의 지배질서이어야 한다고 믿었던 내가 아는 몇 안되는 지도자 중 한명 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전직 대통령 죽이기에 안간힘을 썼던 현 정부의 탄압에 굴복해 스스로 죽음을 선택 했다는 의견에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아옌데가 그랬던 것처럼 그는 자신이 이루고자 했던 민주주의의 꿈을 그가 쓸 수 있는 마지막 카드인 죽음을 통해서 이루고자 했던 것입니다. 400만명에 가까운 거대한 추모인파와 곳곳에서 터지는 현 정부의 반민주적 폭거에 대항하는 민중의 목소리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칠레의 불운한 대통령 아옌데가 다시 화려하게 부활 했듯이 대한민국 16대 대통령 노무현의 죽음은 다시금 활짝 핀 민주주의의 꽃으로 다시 태어날 것입니다.

전직 대통령의 죽음으로도 찾을 수 없는 민주주의라면 이 땅에서 누릴 수 있는 민주주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지상 가수·성공회대 외래교수

이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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