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도 비혼도 ‘룰렛’?

여자 1 : 결혼이 벼슬이야?
여자 2 : 어떤 유부녀들은 처녀 앉혀 놓고 한참 자기 남편들 자랑 하다가 나중에 계산할 때 돈 버는 사람이 돈 내라고 한 대. (중략) 여자 나이 30 넘어가면 유부녀는 벼슬이야. 사람들이 성공한 싱글 보다 일 안 하는 유부녀를 정상으로 보니까.
여자 1 : 넌 결혼 하면 되잖아.
여자 2 : 그렇지. 근데 결혼해서도 내 일을 잘 할 수 있을까? 당장 봐, 주변에 좀 잘 나간다는 선배들 죄다 결혼 안 했어. 무슨 공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서른한 살, 결혼 때문에 나와 일상이 ‘분리’되는 친구들이 늘어간다. 덩달아 오해도 늘어간다. 결혼과 일에 대한 위의 대화에서 느껴지는 긴장감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답답함과 충돌, 섭섭함과 난처함 같은 감정들이 드러난다. 이 감정의 근원은 불만 많은 여자들의 불평일까? 아니면 가치관의 편차가 심해서 나타나는 여자들 간의 갈등일까?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이건 여자들 스스로의 행복에 이야기가 아니다. 누구도 자유롭고 편안하지 않다. ‘결혼적령기 따위!’라고 생각했던 젊은 여성이 나이가 들면서 적절치 않은 평가를 받고 있음을 느낀다. ‘결혼도 안 하고 성공이 무슨 의미?’라고 묻는 아버지때문에, 결혼이 유세인 양 마음을 긁는 친구 때문에, 나이드는 외모가 정말 사랑의 기회를 박탈해가지는 않을까 초조해질 때, 무엇보다 일도 가정도 삶도 안전해 보이지 않고 불안해질 때, ‘뭔가 잘못하고 있나?’싶다. 언제는 ‘엄마와 다르게’ 살라며? 결혼이 여자의 전부가 아니라며?

다른 편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이는 ‘기혼’ 친구는 또 어떤가. 누구보다 행복해지기 위해 자연스럽게 살아가기 위해 평범한 (내게는 특별한)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며 살아가는 그녀에게 시간은 언제나 내 것이 아닌 우리(가족)의 것이 된다. 아이를 돌보거나, 가족 스케줄을 챙기다 보면 일주일이 금새 사라지고, 늘어갈 교육비며 생활비 생각에 오늘 무심코 내버린 커피 값이 못내 아까워진다. 결혼하면 안정된다더니 마음의 안정이 아니라 스케줄의 고정이다. 친구 한 번 만나러 가는 것은 정말이지 크디 큰 프로젝트가 아닐 수 없다. 혼자만의 시간, 자기만의 방이란 꿈같은 이야기일 뿐.

그래서 결국, 각자의 상황과 처지들이 있으니 서로서로 이해하고 화평하자는, 거짓 평화를 조작하자는 것인가? 아니다. 오히려 어떤 위치에서도 불편하고, 무엇을 선택해도 쉽사리 불안해지는 우리들의 처지에 대해 이야기하자는 것이다.

앞의 대화에서 보여지듯 대립하는 두 끄트머리에 결혼한 여자와 결혼하지 않은 여자가 서 있는 구도 자체를 문제삼자. 핵심은 누구누구의 선택이 아니라, 우리 사회(나, 당신, 그리고 우리가 만든 모든 제도)가 여자들을 평가하는 기준에 대한 이야기라고 보는 것이 더 맞다. 높은 점수에는 합당한 보상이 돌아간다. 그것이 평가가 갖는 무서운 힘이다. 평가 앞에서 우리는 기준에 합당하도록 무던히 노력하여 좋은 점수를 받거나, 평가의 기준을 다시 쓰자고 반박하거나, 순위를 매기지 말자고 주장한다. 내 생각에 위의 대화에 등장하는 비혼여성, 기혼여성들이 느끼는 당혹감과 불편함은 평가/보상체계를 우리 사회가 잘 못 쓰고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불협화음인 것 같다.

‘열심히 일하고 노력해서 일과 사랑에서 성공한 여성’이라는 평가 대 ‘결혼과 육아야말로 여성의 기쁨이자 의무’라는 평가는 최대한의 압력과 최소한의 보장이라는 형태로 우리를 거칠게 대한다. 비혼도 선택이고, 결혼도 선택이라면, 모든 선택의 결과는 점점 더 개인의 책임으로 돌아온다. 이쪽 끝과 저쪽 끝에서 모두가 불편한 이 대립은 도대체 누구에 의해서 부추겨 지고 있는 것일까?

내가 아는 한 여성분은 자취방에 혼자 누워 있다가 갑자기 길바닥에 누워 있는 기분이 들었을 때 결혼을 결심했다고 한다. 여자 혼자 살아갈 대안이 없었기에 두려웠던 것이리라. 우리 사회는 결혼한 여성에게 제도적인 보호를 즉각적으로 제공한다. 그리고 다른 것을 요구한다. 앞서 말한 ‘나→가족의 것’으로 변신해야만 수월하게 굴러가는 결혼 시스템이 윙윙 작동을 시작하고, 여기에 최상의 여성다움이라는 평가가 숨어 있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돈이라도 (무척! 적당히는 안 된다) 많이 벌던가.

결혼을 했건, 안 했건, 아이를 낳았건, 낳지 않았건, 돈을 많이 벌었건, 적게 벌었건, 남자를 사랑하건, 여자를 사랑하건, 혹은 그 누구도 사랑하지 않건 간에 우리는 누구나 자유롭고 안전하게 생을 유지하고 싶어 한다. 또한 그럴 수 있는 사회가 인간을 인간답게 진화시키는 사회가 아닐까. 모든 개인이 최소한의 모욕과 최대한의 존중을 경험할 수 있는, 건강한 울타리를 가진 사회를 꿈꾸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