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다’와 ‘틀리다’의 의미함수

강상헌의 한자이야기[9]-다를 이(異) 강상헌l승인2009.10.26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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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다’는 뜻을 그림으로 표현해보라는 시험(試驗)문제가 주어진다면 당신은 어떤 답안을 만들겠는가? 갑골문 태동기(胎動期) 중국 황하(黃河) 유역에 살던 상(商)나라 사람들은 귀신(鬼神)의 얼굴을 한 사람이 양 팔을 벌리고 있는 모습을 그렸다. 의외(意外)다.

밭 전(田)자와 함께 공(共)자를 위아래로 붙여놓은 얼개의 간단함 때문에 흔히 사람들은 이 글자의 뜻을 짐작하는데 애를 더 많이 먹는다. 우리가 현재 만나는 해서체(楷書體) 문자는 수천 년 역사 속에서 햇빛과 달빛에 바래고, 여러 겹겹 세대의 인구(人口)에 닳고 닳아 만들어진 전통의 소산(所産)임을 생각하지 못하는 까닭이다. 이 ‘귀신사람’ 모습 글자가 어떤 경과를 거쳐 오늘의 모습에 이르렀는지 하는 궁리가 소위 ‘문자학’(文字學)이다.

너와 나, 우리처럼 생기지 않아 기이(奇異)하다는 의미를 두드러지게 나타내고 싶었겠다. 사람이 귀신의 탈을 쓴 것이라고 추측되기도 한다. 이 그림 글자는 세월을 따라 흘러 사람이 사는데 매우 긴요(緊要)한 뜻으로 정착했다. 기이한 것은 다른 것, 진귀(珍貴)한 것으로 무릇 인간의 호기심(好奇心)의 과녁이 된다. 일상(日常)과는 다른 이상한 것에 우리는 관심(關心)을 쏟는다.

흔히 ‘알 권리(權利)’라고 하는 것은 새로운 것, 색다른 것을 알고자하는 욕구(欲求)가 인간의 본성이라는 정의(定義)를 법률적으로 표현한 개념이다. 이런 권리 또는 본성의 대상이 이(異)의 본디와 맥(脈)을 함께 한다. 세상을 움직이는 중요한 동력(動力) 중의 하나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 이 ‘다르다’는 말의 사용법이 크게 혼란(混亂)을 겪고 있다. ‘다르다’고 해야 할 대목을 상당수 사람들이 ‘틀리다’라고 말한다. 또 어떤 이들은 이를 따라 배운다.

방송에 나오는 연예인들도 그렇지만, ‘지식인’이란 패찰(牌札)을 붙여줘도 될 만한 인사들까지도 마찬가지다. 옆에서 진행자가 일부러 “다르지요”라며 주의를 주는 유도발언을 해도 눈치조차 못 챈다. ‘다르다’[異]와 ‘틀리다’[誤(오)]를 구분 못하는 일종의 문맹(文盲)이다.

다른 것은 같은 것의 반대어다. 같다는 뜻의 한 가지 동(同)자가 이 이(異)자의 반대어다. ‘틀리다’는 옳지 않다는 것이다. 바르지 않다는 것이다. 옳은 것은 바를 정(正)이고 틀린 것은 그를 오(誤)다.

‘틀리다’가 ‘다르다’의 뜻도 가지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는 이도 있다. 우리 모두 ‘틀리다’를 ‘다르다’는 뜻으로 사용하고, 이 같은 활용이 사회적인 합의(合意)를 얻는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 그렇게 쓰는 것이 사회의 흐름을 반영하는 것이라든지, 정서적으로 이롭다든지 하는 그런 공통의 평가를 말하는 것이다.

어쩌면 지금 그 두 단어는 의도했던, 아니던 그 합의 도출(導出) 과정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경우 오래전부터 국어 연구자를 비롯한 많은 전문가들과 시민들이 그 활용에 있어 여러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 그래서 이를 피하자는 의견을 내고 있다.

심지어 사전에도 ‘틀리다’를 ‘다르다’로 활용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해석까지 적혀 있다. 우리 사회에서 무의식적(無意識的)으로 그 같은 활용이 거듭되어왔다는 것의 반증(反證)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오류(誤謬)는 그치지 않는다. 왜 그럴까?

필자는 저어한다. 혹 우리의 전통과 얼개 때문에 사회 구성원(構成員)들의 상당수가 ‘다른 것’을 ‘틀린 것’,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는 잠재의식(潛在意識)을 가지게 된 것은 아닌지 하는 걱정이다. 일률적(一律的)인 생각에서 벗어나면 ‘왕따’라는 의식 말이다. 나와, 또는 상식과 다르면 틀렸다고 결론짓는 생각의 방법이 이런 언어 습관으로 노출되는 것은 아닌지.

그러면서도 모두들 ‘생각을 바꿔야 생존(生存)할 수 있다’라는 마케팅용(用) 표어를 입에 달고 산다. 생각이 ‘틀려져야’ 살 수 있다는 것은 아닐 터다. 생각도, 언어습관도 달라져야 할 시점(時點)이다.

*<시민사회신문> 한자교육원 홈페이지(www.yejiseowon.com)

갑골문에 나타난 다를 이(異)자의 모양
토막해설-다를 이(異)


‘다르다’는 추상(抽象)의 뜻을 산(山)처럼 물체(物體)를 표현하는 상형(象形)의 방법으로 만든 점이 특이하다. 설문해자는 ‘준다’는 뜻의 비자가 들어있다 해서 ‘나눈다’, ‘나누면 달라진다’는 식으로 풀었다. 그 후 발견된 갑골문 때문에 해석이 다소 달라졌다. 이런 이유로 밭의 뜻과 상관이 없지만 밭 전(田) 부수에 포함되는 점을 유의할 것. 분류(分類) 당시의 모양을 기준으로 부수 등을 정했던 까닭이다. 그러나 고문자(古文字)의 손과 팔 모양을 보고 ‘나눈다’고 풀기도 한다. 고고학처럼 한자의 역사성을 톺아보는데도 상상력은 필요하다.


강상헌 논설주간․한자교육원 예지서원 원장

강상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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