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재판장 정형식)가 지난 12일 정연주 전 KBS 사장이 이명박 대통령을 상대로 낸 해임처분 무효 청구소송에서 “해임처분을 취소한다”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해임처분은 대통령에게 주어진 KBS 사장의 해임에 관한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위법이 있다고 볼 여지가 있다”며 “2008년 8월 11일 정 전 사장을 해임한 처분을 취소한다”고 밝혔다. 또 재판부는 ‘국세청과의 세금소송을 조정으로 마무리해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는 해임 사유에 대해 “한국방송이 합리적인 과세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오랫동안 국세청과 협의했고, 1년 이상 내·외부 자문을 거쳐 조정안을 마련한 점에 비춰 보면 이를 해임 사유로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해임처분 절차를 대해서도 재판부는 “정 전 사장에게 처분 내용을 사전에 통지하거나 소명기회를 줬다고 볼 증거가 없고, 해임처분의 법적 근거나 구체적 사유를 전혀 제시하지 않는 등 절차상으로도 위법하다. 한국방송 사장의 임기제는 공영방송의 독립성·공정성·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해임처분의 기준을 엄격하게 해석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번 판결을 볼 때 정부가 방송 장악을 위해 무리수를 뒀다는 게 확실해졌다. 이명박 정권이 친여 이사들로 KBS이사회를 장악한 과정과 이들이 정 사장을 해임 제청하고 대통령이 정 사장을 해임하는 과정 모두 위법하다고 볼 수 있다. 보수단체와 권력기관이 동원한 해임으로 그 위법성이 적나라하게 확인된 셈이다. 또 KBS이사회의 무리한 결정절차에도 법원이 분명한 경고장을 보낸 것이고 나아가 이명박 정부의 언론장악에 ‘유죄’를 선고한 것이라는 데 공감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사실 지난해 검찰이 정연주 사장을 배임 혐의로 기소했지만, 올 8월 법원이 무죄를 선고하면서 이미 법을 어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지난해 방통위가 신태섭 이사에 대해 ‘동의대 교수에서 해임됐다’는 이유를 들어 KBS 이사에서 해임했지만, 지난 7월 부산고법은 신 교수의 해임이 무효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나아가 방통위가 신태섭 이사 후임인 강성철 교수의 KBS 이사 임명 처분까지 취소하라는 판결을 내렸을 정도다. 이사 해임과 보궐이사 임명 모두가 부당하다는 것이다. 당사자인 정연주 전 사장도 이번 판결에 대해 “절차적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일깨운 당연한 결정”이라며 “이명박 대통령이 판결정신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국민과 역사의 심판에 직면할 것”이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시민사회와 언론단체는 법원의 판결이 나온 만큼 이명박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청와대·방통위·감사원·국세청 등도 정치적·도의적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지적이다. 또 지난해 8월 8일 정연주 사장 해임제청안을 통과시켰던 이들을 ‘공영방송 파괴 6적’이라고 칭하며 방송계를 떠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사법부의 판결은 그동안 공영방송 수호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시민사회의 큰 열매로 남게 됐다.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유린하는 세력에 대해 경종을 울린 것은 두 말할 나위 없다. 아울러 이참에 정부는 법과 절차를 어기며 일방독주했던 수많은 정책들을 재검토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사과할 줄 알고 반성할 줄 알아서 국민에게 신뢰를 심어줄 수 있는 기회를 떠나보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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