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반민족행위자 168명 조사 2100억원 환수 성과
보고서를 택배로?…친일반민족행위자 후손 반격 계속

노무현 前 대통령님.

저는 지난 2006년 7월 출범하여 만 4년간 친일 반민족행위자의 친일재산을 국가로 귀속하는 업무를 담당하는 '대통령소속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이하 '친일 재산조사위')'의 조사관으로 일해왔습니다.

그리고 2010년 7월 12일, 위원회가 업무를 종료하면서 비록 일개 조사관에 불과하지만 꼭 대통령님께 제 나름의 '마침 보고'를 드리고 싶어 이렇게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 대통령님께서는 이미 이 세상 분이 아니지만 이 법을 제정할 당시 대통령으로 계셨기에 이제 위원회가 문을 닫은 지금, 조사관 입장에서 소박하게나마 '마침 보고'를 드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12일 친일반민족행위재산조사위원회 활동 종료식 징면.

돌이켜 생각해보면 지난 2006년 7월, 법 제정후 위원회가 출범한다는 소식을 듣고 저는 가슴이 설레었습니다. 1949년 친일파에 의해 반민특위가 강제 해산된 후, 60여년만에 출범하는 친일 재산조사위에서 일할 수 있다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참으로 저는 운이 좋았습니다. 조사 경력을 인정받아 채용시험에 합격한 후 김창국 위원장님께서 워크숍에서 하신 그때 말씀이 새롭습니다.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는 이 좋은 일을, 그것도 월급까지 받으면서 할 수 있으니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들입니까! 우리 모두 최선을 다해 역사에 죄짓지 않도록 열심히 일하겠다는 약속을 합시다."

그렇습니다. 비록 모든 이들을 다 만족 시킬 수는 없었지만 부끄럽지 않도록 노력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아쉬운 점도, 부족한 점도 없었다고 할 수는 없었습니다.

2천359필지에 달하는 토지 국고 환수
국가유공자 후손 등을 위한 재원 예정

저희가 지난 4년간 조사한 친일반민족행위자는 모두 168명이었습니다. 2천359필지(1천113만9천645㎡)에 달하는 토지를 국고로 환수했으며 이는 여의도 면적 1.3배에 달하는 정도의 성과였습니다. 굳이 액수로 치자면 공시지가 959억원, 시가로는 2천106억원 상당에 이른다고 합니다. 이 재산은 앞으로 국가유공자 후손 등을 위한 재원으로 쓰여질 예정이며 이미 국가보훈처와 국토해양부로 명의가 이전되었습니다.

또한 이미 처분되었거나 각종 공공사업으로 인해 보상 수용된 친일 인사 24명의 친일재산 116필지(192만 9천758㎡, 공시지가 152억원 상당)를 확인하고 부당이득반환청구 소송을 통해 한 푼이라도 더 국가에 귀속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이같은 노력을 통해 민족을 배반한 친일행위를 댓가로 부당한 이익을 얻지 못하도록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실무적인 일을 통해 경험한 이 법은 여러 가지 많은 미비점이 있다고 생각되었습니다. 특히 친일을 ‘댓가로’ 취득한 재산이라는 법적 표현 때문에 상당수 많은 재산이 국가귀속 되지 못하는 웃을 수 없는 일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1930년 중추원 참의(일제가 임명한 지금의 국회의원에 해당하는 관직)에 임명된 친일 반민족행위자의 경우 참의 이전에 취득한 재산은 친일재산으로 볼 수 없다며 제외시켜야 했습니다. 즉, 임명일 이전에 취득한 20년대 재산은 대가성이 없다며 제외를 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이것은 참 모순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 어느날 갑자기 일제가 친일 반민족행위자에게 국회의원에 해당하는 중추원 참의 관직을 내렸을까요? 지금도 국회의원 공천 하나 받으려면 그 당에 십수년은 충성해야 받을까 말까한데 그가 중추원 참의가 되었다면 적어도 일제로부터 깊고 깊은 신뢰를 받았다는 반증 아닌가요?

따라서 저는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된 이는 일제 강점기 기간인 1910년부터 1945년 사이 취득한 모든 재산을 친일재산으로 규정하여 국가귀속 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재산 몰수형으로 볼 수 있는 이같은 제 생각이 정말 과격하고 지나친 생각일까요?

저는 민족을 배반한 행위는 일대일 대응 처벌이 아니라 그보다 더 크고 가혹해야 역사적 정의에 부합한다고 생각합니다. 범죄행위를 통해 얻은 수익만 내 놓으라고 한다면 민족을 배반한 댓가 치고는 너무나 빈약하지 않을까요?

그렇다보니 실제로 경기 안성에서 41년 중추원 참의를 지낸 친일반민족행위자 박필병의 경우, 위원회 활동을 통해 사전조사개시된 150필지가 넘는 땅이 그의 친일행위 이전인 20년대말에 취득한 재산이라고 하여 단 한필지도 국가귀속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친일파 후손이 모르던 땅까지 위원회가 찾아 돌려주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예가 하나 둘이 아니었습니다. 이같은 법의 헛점이 훗날, 또다시 민족을 배반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안이한 판단을 하는 기준이 되지 않을까 안타까울 뿐입니다.

친일 보고서를 욕심낸 대통령님,
그리고 ‘대통령 소속’이라는 자랑스러움

노무현 前 대통령님.

저희와 함께 출범했던 친일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가 2009년 11월 28일, 위원회 업무가 종료된 후 성대경 당시 위원장님을 비롯한 진상규명위 관계자 분들이 보고서 한질을 들고 묘역을 참배한 적이 있었죠? 그때 이 땅의 보수 언론과 인사를 자처하는 이들은 '봐라! 과거사 관련 기구가 누구의 조직인지 확인되지 않았냐'며 이해하기 어려운 비난을 한 것을 기억하시죠? 참으로 안타까운 비난이었습니다. 과연 민주주의 국가에서 재임 당시 많은 관심과 애정을 기울여 법을 제정한 전임 대통령께 그 성과를 보고서 한질에 담아 헌정한것이 그토록 정치적으로 비난 받아야 할 일인지 안타깝습니다.

그런데 그 후 알아본 이야기는 가슴 애잔함을 느끼게 했습니다. 대통령님께서 ‘대통령소속 친일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 출범 당시 위원들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후 가진 다과회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여러분께서 위원회 일을 마칠때쯤이면 저는 대통령 임기가 끝나 있을 겁니다. 그러면 그때는 제가 대통령이 아닌데 혹시 일이 끝난 후 제가 보고서를 하나 받아 볼 수 있을까요?'라고 말씀하셨다는 겁니다.

그러자 위원들이 대통령님께 ‘업무가 끝난 후 꼭 보고서를 전달해 드리겠습니다’라고 약속을 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님께서 애석하게도 그 일이 있었고, 이에 위원들은 생전 대통령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봉하 묘역으로 가서 보고서 한질을 그 제단위에 올려놓았다는 사실입니다. 참으로 깊은 감동을 느꼈습니다. 임기가 끝났음에도 역사적 사실에 대한 보고서를 받고 싶었던 대통령님의 그 마음과 또한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방문한 위원회 위원들의 그 마음. 전율을 느낄만큼 감동적이었고 그 마음 하나하나가 다 고마웠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렇기에 저 역시 일개 조사관에 불과하지만 꼭 이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노무현 前 대통령님.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 조사관으로서 열성을 다해, 그리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일해 왔습니다. 그리고 비록 한참 모자란 성과일수 있지만 국민적 염원과 대통령님의 바람처럼 늦으나마 민족정기 수립을 위해 일해 왔음을 보고 드립니다. 앞으로 남은 과제도 많지만 그래도 대통령님의 의지가 아니었다면 과연 이 법이 만들어질 수 있었을까요. 저는 그래서 대통령님이 고맙고 또 출범하면서 '대통령 소속'이라는 조직 명칭이 참 자랑스러웠음을 고백합니다.

보고서 택배로 보내라는 청와대 모 수석
기간이 더 있었다면 ‘정리’ 아쉬움

그런데 참 섭섭한 일이 있었습니다. 믿고 싶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위원회가 4년여의 업무를 마치면서 그래도 청와대에서 나름대로 수고한 위원회 위원장과 위원들을 초청하여 지난 시기 활동에 대한 보고도 좀 듣고 격려도 해주지 않을까 싶어 알아보다가 참으로 뜻밖의 이야기를 듣고 황망했습니다.

위원회 업무가 끝나기 몇일 전, 위원회 업무 담당 과장이 청와대 모 수석에게 보고서를 들고 찾아가 전달도 하고 보고도 좀 드리겠다고 하자 '굳이 그럴 필요 없다. 그냥 택배로 보내라'는 답이 돌아왔다는 것입니다. 담당 과장의 수고로움을 덜어주고자 한 청와대 관계자의 선의로 받아들여야 할까요?

노무현 前 대통령님.

위원회는 문을 닫았지만 아직도 친일반민족행위자 후손들의 반격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이 법이 위헌이라는 소송이 헌법재판소에서 심리중이며, 국가귀속된 친일재산을 돌려달라는 후손들의 소송 역시 수십건이 진행중입니다. 일부에서는 '법에 따라 2년 추가 조사를 할 수도 있었지만 조사 기간을 연장하지 않은 이유'를 궁금해 하는 분들이 있지만 ‘과거사 관련 기구의 기간 연장없이 업무 종료 방침을 밝힌 현 정부에서 구차하게 하지 않겠다’는 위원회 입장에 따라 서둘러 일을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재산조사위 활동 종료식에서 김창국 위원장이 상념에 잠겨��다.

다만 김창국 위원장님의 말씀처럼 “1년 정도 더 기간이 있었다면 현재 진행중인 각종 소송을 마무리하고 일부 일본인 명의 재산을 확실하게 정리할 수 있었을텐데”하는 아쉬움은 남았습니다. 하지만 이것 역시 역사의 한 평가로 남을 것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여기까지였습니다. 안타깝고 아쉽지만 또 다른 내일을 기약해야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역사속으로 사라진 친일재산조사위,
그러나 내일은 있다...

노무현 前 대통령님.

이제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는 역사속으로 사라졌습니다.

1949년 친일파에 의해 강제 해산된 반민족행위 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의 못 다한 일을 수행한다는 자부심으로 지나온 4년. 아쉬움과 안타까움도 컸지만 만나는 분마다 좋은 일 한다고, 휼륭한 일 한다고 격려하고 칭찬해 준 친일 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 때론 친일반민족행위자의 후손으로부터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을 30여분가량 듣기도 했고, 또 때로는 이름도 알 수 없는 깊은 산속에서 불과 3평짜리 토지를 찾기 위해 숱하게 구르고 기어가며 찾아 나섰던 그 기억도 이젠 역사속으로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저는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60년전 강제 해산된 반민특위로 끝나지 않고 시도한 오늘날 이 노력이 먼 훗날, 후손들에게 우리를 부끄럽지 않게 할 것임을. 그리고 부족하지만 우리가 해내었던 이 성과를 조사관으로 일했던 제가 노무현 前 대통령님께 보고 드릴 수 있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노무현 前 대통령님. 편히 잠드소서.

고상만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 前 조사관

고상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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