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예산제, 풀뿌리 시작이자 마침표

'연대와 참여'만이 정공법이자 희망 심재훈l승인2007.05.10 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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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시민단체활동가들이 지난 23일 광주 북구청을 방문해 구청관계자들로부터 주민참여예산제 시행 현황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지난 2004년 광주 북구, 울산 동구 등에서 주민참여예산조례가 제정됐을 때만 해도 주민참여예산제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확대로 환영받았다. 3년이 지난 올해 예산 조례 제정 운동은 난관에 부딪쳤다.

“올 3월 시에서 참여예산조례 입법예고를 했다. 주민이 참여하는 위원회도 없을 뿐 아니라 지역회의도 시장 들러리격인 시정자문위원회가 대체한다는 보수적인 안이었다. 복지세상에서 의견서를 제출했지만 임시회에서 상정조차 안됐다.”(김경화 천안 참여복지네트워크 사무국장)

“시흥에선 시당국이 표준안이 나온 지 4개월 만에 일사천리로 조례를 만들었다”(김경민 안산 경실련 사무국장)

행정자치부는 지난해 8월 주민참여예산운영조례 표준안을 내놨다. 지금까지 예산편성과정에서 소외된 주민의 뜻을 반영하란 취지에서 행자부가 제시한 것이였다. 이후 조례제정에 소극적이었던 지역자치단체들이 무더기로 조례를 제정했다. 이전까지 고작 지자체 9곳이 조례를 제정했거나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표준안이 나온 지난해 8월을 기점으로 올 4월까지 31개의 지자체가 예산조례를 만들었다.

외형적으로는 많은 지자체들이 예산조례를 제정했지만 문제는 내용이다. 조례가 제정된 40개 지자체 가운데 과반이 넘는 24곳의 내용이 행자부 표준안을 빼다 박았다. 표준안에는 주민이 예산편성에 참여하는데 필수적인 위원회, 협의회, 연구회 등이 설치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단서조항이다.

김경화 사무국장은 “지자체는 법적 근거가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위원회 설치 등이 의무조항이 아닌 한 참여예산제는 유명무실하게 된다.”고 말한다. 모든 지자체에 적용해도 무방한 낮은 수준에 예시에 불과하지만 지자체에겐 모범답안이 됐다.

상을 차려줘도 떠다 먹여주기 전까진 눈치 보며 재는 상황이 현재 지역자치의 모습이다. 여기에다 대부분 지자체에서 기본적인 예산편성요구서조차 공개되지 않는 상황에서 주민이 직접 예산편성에 참여하는 주민참여예산제는 큰 도전이다.

저비용 고효율에 주목

30년 권위주의 통치와 반백년 짧은 근대 정치제도 흡수 과정에서 우리의 민(民)은 관(官)을 대상으로 접했고 그런 만큼 참여공간을 확보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참여예산제의 중요성은 부각된다.

오미덕 광주 참여자치21 예산감시센터 소장은 “일반적으로 단체장의 예산유용 같은 비리에 대해선 분노한다. 하지만 훨씬 큰 규모일 뿐 아니라 개인의 삶에 영향을 주는 지자체 예산이 어떻게 쓰이는지 큰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최근 부각되는 주민소송 · 주민소환제도 결국 단체장 또는 지자체의 잘못된 결과에 대한 주민의 대응이지만, 예산참여제는 예산편성부터 결산까지 시민이 참여하는 높은 수준의 지역자치제도다. 이런 의미에서 예산참여제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시작이자 마침표다.

참여예산제를 두고 형식적인 참여를 위해 너무 많은 예산을 들이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그러나 참여의 가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

김경민 대구YMCA중부지회 관장은 “참여가 수반되지 않는 행정에는 필연적으로 사회적 비용이 따른다. 행정이 사회의 모든 분야를 조직하고 관리할 수는 없다. 주민의 자발적인 참여가 수반될 때 행정의 관리비용은 그만큼 줄어든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참여예산이 궤도에 오른 광주 북구청의 경우 ‘우리마을’ 조성사업은 도시공간 활용의 대표적 성공사례로 손꼽힌다. 1개 동에 배정된 예산은 연간 1천만원 정도로 저비용고효율 구조를 만들어냈다는 평가다.

이러한 예산참여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아직 250여 지자체 가운데 40곳 만이 조례를 제정했다. 행자부 표준안 때문에 꼭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은 아니다. 관의 경직성, 시민의 참여 미흡, 지역토호들의 폐쇄성이 삼위일체를 이루면서 풀뿌리의 자리매김을 어렵게 한다.

강금수 대구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시와 시의회가 참여예산제도가 비효율적이란 선입관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대다수 지역시민단체가 운동을 전개하는 데 가장 먼저 부딪히는 공직사회의 비협조와 경계심이다.

하지만 이런 선입관은 제도가 시행되면 얼마 지나지 않아 기우에 그친다. 2004년 3월 전국 최초로 참여예산조례를 만들어 3년 동안 운영해온 광주 북구의 공무원들은 참여예산제가 가진 효용을 인정한다.

광주 북구청 기획감사실 이승래씨는 “단체장의 의지로 제도가 도입된 탓에 공무원사회에서 부담을 많이 느꼈다. 하지만 예산편성과정에 주민들이 참여하면서 시민과 공무원이 의사소통하게 됐고 공무원 불신 해소라는 결과도 덤으로 얻었다”고 말한다.

지자체 바라보기, '문제 명확'

무엇보다 희망을 이어갈 수 있는 근거는 주민참여제가 도입 3년밖에 안된 현재진행형이라는 데 있다. 오미덕 예산감시센터 소장은 “위원회와 연구회 등을 조문화해 주민참여 폭을 넓힌 시민사회가 조례라는 성과물을 거둔 데 그치지 않고 지속적인 감시와 제안을 통해 주민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예산참여제도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참여예산제도를 확산시키기 위해 곳곳에 희망의 꽃씨들이 뿌려지고 있다. 대다수 지자체가 표준안을 따르는 상황에서도 시민단체 주도로 이미 제정되어 있는 조례를 강화시키는 이례적인 사례들이 있다.

안산지역 9개 시민단체가 참여하는 안산참여예산네트워크의 예산조례 제정운동이 그 중 하나다. 안산에선 2005년 참여기본조례가 제정됐다. 하지만 올해 예산네트워크가 연구회 구성, 예산교육 강화 등 주민참여 폭을 넓힌 조례안을 제시했다. 지난 시민단체와 안산시가 주민참여기본조례 제정을 위한 토론회를 지난달 22일 개최했고 현재 개정을 위한 협의가 진행되고 있다.

이병국 함께하는시민행동 예산감시팀장은 “다수의 모범사례를 만들어 재정운영에 있어 참여예산제가 효과적이라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래야 지자체가 서로 좋은 조례를 만들려고 경쟁하는 분위기가 형성된다.”며 안산시 모델이 다른 지자체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평가했다.

모든 운동이 그렇듯 모델을 만드는 일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연대다. 대구·대전·안산·천안 등 지역별로 예산네트워크는 활성화되어 있지만 이런 활동과 고민을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전국 네트워크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함께하는시민행동을 중심으로 예산감시네트워크가 활동하고 있지만 지역단체와 정보를 교류하고 전국상황을 취합하는 정도다.

황차은 민주노동당 광주시당 여성위원장은 “조례제정운동에서 아쉬운 부분은 시민단체가 지역 지자체와의 관계에 골몰하지 네트워크를 형성해 영향력을 확대하고 정당들과 교섭력을 가지려는 의지는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제정만 하고'성과주의도 한계

가시적으로 주민조례라는 성과를 제시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시민과 함께하는 것이다. 엄홍석 안산YMCA간사는 “많은 활동가들이 조례에 대한 눈높이를 모범사례라고 불리는 광주 북구나 울산 동구로 잡은 것 같다”며 “조례란 결과 못지 않게 지역사회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는 풍토를 만들어 나가는 운동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수십년 이어진 관의 독주구조가 쉽게 바뀌진 않는다. 게다가 민관협력의 전통도 미약하다. 이런 상황에서 ‘도 아니면 모’식으로 한 번에 모두를 확보하는 운동으로 기존의 틀을 바꾸더라도 그것을 어떻게 시민의 실질적인 참여 속에 지속시킬지 과제는 남는다. 참여예산제의 위원회가 말만 무성했지 껍데기뿐인 관주도의 수많은 위원회처럼 되지 말란 보장도 없다.

여성노동운동가에서 지난 1998년 광주 북구 구의원으로 지역의정을 경험했던 오미덕 예산자치센터 소장은 “의회에서 바꾸자고 강력히 주장하면 금세 달라질 줄 알았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그때 배운 것이 더디더라도 주민과 참여의 인식을 나누면서 바꿔가는 것이다”고 말한다.

지금 요구되는 건 시민 참여에 대한 공감과 이를 확산하는 저변의 운동이다. 제도를 도입하기 위한 노력 뿐 아니라 참여가 희망이라는 메시지를 전파하는 대중활동이 중요하다. 그것을 가능케하는 건 오직 사람이다. 그리고 가능하다는 희망이다. "난관을 극복하는 것이 운동입니다” 오미덕 소장의 말이다.
심재훈 기자

심재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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