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글의 순결을 위한 작은 생각들

강상헌 칼럼 강상헌l승인2011.07.04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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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장이나 식품회사를 위해 그들의 상품을 설명하는 글을 손질해줄 기회가 있었다. 한 지자체의 농업 관련 행사를 도울 때였다. ‘~을 싸게 팝니다’라고 필자가 쓴 문안을 들고 담당자가 아주 곤혹스런 표정을 지으며 얘기했다. ‘저렴하게 판매합니다’로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 설명을 들어보니 ‘싸게 판다’는 말은 무게가 없어 곤란하다는 것이었다.

정확하고 구체적인 우리말이 있는데 왜 한자말을 쓰느냐며 설득했다. 그러나 며칠 후 인쇄돼 나온 행사 소책자를 보니 ‘싸게 판다’가 모두 ‘저렴하게 판매한다’로 고쳐져 있었다. 담당자는 “같은 일하는 동료들도, 물건을 내는 농장이나 회사들도 모두 반대해 다른 방법이 없었다.”고 말했다.

아직 필자는 ‘싸다’와 ‘저렴(低廉)하다’의 무게에 대해 헷갈린다. 다만 백화점이고 집 부근 수퍼마켓이고 할 것 없이 매일 뿌려대는 전단지에서 싸다는 말 대신 저렴하다는 ‘무게 있는’ 말이 똬리를 틀고 있다는 사실을 날마다 확인한다. 신기하게도 ‘싸다’는 말은 정말 보기 어렵다. 말과 글을 다루는 직업 때문에 겪는 어려움이 있다. 일종의 직업병이라고나 할까? ‘저렴하게 판매한다’가 자꾸 눈에 띄는 것이 그 증상(?)의 하나다.

“행사에서 빠지면 빠졌지 ‘싸게 판다’고는 절대 쓸 수 없다.”고 화를 냈다는 한 농장주인 얘기도 가끔 떠오른다. 말을 할 때는 ‘싸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글을 쓰면서 어떻게 그런 말을 쓰느냐고 했다는 것이다. 이런 ‘사소한’ 에피소드들을 버릴 수 없는 것도 실은 직업병 차원이다.

언제부턴가 ‘좋아한다’는 말을 밀어낸 ‘선호한다’는 말의 유행에 서운함을 느끼는 것도 필시 그 증상일 터다. 더구나 선호(選好)라는 낱말은 ‘가려서 좋아 한다’는 뜻, 즉 둘 또는 여러 개 중에서 골라 좋아한다는 것이니 ‘좋아한다’는 말과 완전히 똑 같지 않다. 그런데 이런 뉘앙스의 차이는 막무가내다. ‘좋아한다’와 ‘선호한다’는 같은 뜻이 된 것이다.

‘선호한다’가 더 세련되게 느껴지는 것일까, 특히 젊은 층의 말투에서 그런 심리의 한 단면을 본다. 예쁜 아이돌 소녀 연예인들에게서 듣는 ‘선호한다’는 말은 더 안타깝다. 어떻게 하면 ‘좋아한다’는 아름다운 그 말의 자리를 꿰찬 ‘선호한다’를 몰아낼 수 있을까 하는 궁리도 예의 그 직업병 증상일까?

굳이 없어도 되는 ‘위치’(位置)라는 한자말 섞은 ‘위치하다’는 말이 또한 유행을 타고 있다. 뜻을 생각해보면 이는 좀 의아하다. ‘어디에 있다’로도 완전한 것을 굳이 ‘어디에 위치한다’로 쓰는 것이다. 장소 관련 영어단어 locate(로케이트)의 의미를 과다하게 우리말에서 활용하는 예로 생각된다.

예를 들자면 “역사적 유물인 동대문은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다.”(~is located in~)는 번역 투 문장이 우리말글에서 ‘더 멋있는 말’로 쓰이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이런 말투는 ‘~에 주소를 두다’는 말의 유행에까지 가지를 친다. ‘~에 있다’ 보다는 ‘~에 주소를 두다’는 어설픈 외국어식 말이 더 그럴싸한, 시쳇말로 ‘좀 있어 보이는’ 말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분위기인 것이다.

우리 말글 속의 한자(漢字)의 뜻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필자는 늘 말한다. 직업의 경험이 가르쳐준 방법론이다. 그런데 한글만으로 충분하다며 반박하는 이들이 있다. 인터넷 상으로 익명의 어떤 이는 ‘매국노’라는 낱말까지 들먹이기도 했다. 까닭은 모르겠지만 친일파라고 댓글에 쓴 이도 있었다. 글을 보니 이들은 한자에 접하지 못한 세대들이었다.

거꾸로 ‘싸다’ 보다 ‘저렴(低廉)하다’, ‘좋아하다’ 보다 ‘선호(選好)하다’, ‘있다’ 보다 ‘위치(位置)하다’를 더 ‘선호’하는 이런 대중적 언어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고민이다. 굳이 정확하지도 않은, 필요도 없는, 어색한 한자말을 골라 쓴다, 설명하기 어려운 이중성이다. 비슷한 사례가 우리의 언어생활 곳곳에 퍼져있다.

언어는 생명체다. 대중과 더불어 세상을 돌며 그 뜻과 모양을 바꾼다. 그 변화는 ‘필요’에 따른 자연스런 현상일 터다. 그러나 정원사의 가지치기와 같은 돌봄 또한 필요할 것이다.

인터넷에 이은 모바일의 개벽(開闢)이 말과 글을 뒤집어놓고 있다. 그 변화는 예전의 변화와는 견줄 수 없을 정도다. 국수주의(國粹主義)와도 같은 속 좁은 마음자세는 또한 피해야 하겠지만, 우리 말글의 순결함을 망가뜨리지 않으면서 거센 변화에 발맞추게 하는 면밀한 연구가 필요한 시점일 것이다. 말과 글은, 우리의 생각을 담는 그릇이다. 내 모습인 것이다.


강상헌 논설주간

강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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