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사회와 무상급식

오늘날 우리 사회의 화두가 ‘공정사회’다. 공정사회는 다양한 형태로 설명이 가능하지만 가장 떠오르는 말이 누구에게나 똑 같은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기회의 균등’이라 하겠다. 적어도 출발선은 같아야 한다는 취지라고 생각 든다. 물론 출발선상에서의 각자의 능력은 다음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출발과정에서부터 불균등한 것들을 어떻게 보완할 것인가의 문제와 관련 요즘 대두되고 있는 서울시의 무상급식 문제가 아닐까 한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 무상급식 문제로 서울시는 말할 것도 없고 정치권이 복지를 포퓰리즘 논란에 휩싸인 채 어린 학생들의 먹는 문제를 가지고 정당이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렇게 첨예하게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공정사회의 핵심인 ‘기회의 균등’과 관련 좀 더 깊숙이 문제의 핵심을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부잣집 아이들은 이미 유아기 때부터 과외를 통하여 학교에 들어오게 되고 가난한 집 아이들은 과외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한 끼 밥을 걱정하며 살아야 하는 절박한 환경에 놓이게 된다면 관연 출발선이 같다고 하여 ‘기회의 균등’이 이루어졌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누구나 같은 형태의 급식을 하게 된다면 적어도 가난한 집 아이들이 거의 매일 겪고 있는 먹는 문제에 관하여는 빈부격차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은 적어질 것이며, 오로지 공부하는데만 전념하게 되어 어느 정도 ‘기회의 균등’은 실현할 수 있다고 본다.

따라서 이번 서울시의 무상급식 반대는 표면적으로는 단계적으로 무상급식을 한다는 점에서 그럴싸해 보이지만 이는 다분히 정략적 발상에 의한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왜냐하면 무상급식 반대를 위한 주민투표 발의와 관련하여 현재 드러나고 있는 문제점만 보더라도 타당성을 갖는다고 보기에는 미흡하기 짝이 없기 때문이다.

첫째, 주민투표법 제7조 제2항에서는 ‘다른 지방자치단체의 권한 또는 사무에 관한 사항’과 ‘지방자치단체의 예산에 관한 사항’은 주민투표에 부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는바, 이미 서울시 교육청에서 제기한 것처럼 자치단체간의 권한 쟁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점과 무상급식은 근본적으로 서울시의 예산과 밀접한 사항이라는 점에서 논란이 예상된다.

둘째, 주민등록법 제37조와 관련해서도 ‘다른 사람의 주민등록증을 부정하게 사용한 자’나 ‘다른 사람의 주민등록번호를 부정하게 사용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어, 이미 드러난 주민번호 도용 등에 따른 서명용지의 무효 논란에 이르기까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더구나 지난 4일부터 10일까지 7일간 서울시와 25개 자치구 민원실에 청구인 서명부의 사본을 비치해 열람 및 이의신청을 받은 결과가 13만 4662건으로 33%가 가짜 서명부라는 의혹을 받고 있으나, 서울시에서는 제출된 81만 5817명의 서명 중 67%인 54만8342명의 서명이 유효하다고 밝혀 주민투표를 실시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고 강변하고 있다.

그러나 무효서명용지를 제외하고서라도 투표청구인 수를 넘겼기 때문에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라, 7일 간의 이의 신청기간에 드러난 무효 서명자 수가 전체 서명자의 33%에 달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체 서명자에 대한 검증을 한다고 했을 경우 더 많은 무효 서명자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특히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11일 한나라당 서울시당 운영위원회에서 '주민투표에서 승리하면 총선 대선 국면에서 훨씬 유리한 지형을 만들 수 있다'며 무상급식 반대 주민투표가 오세훈 자신과 한나라당의 정치적 이해 때문에 강행하고 있음을 스스로 밝혀 이 모든 것이 오세훈 시장의 대권 야욕을 위한 정치도박의 일환임이 드러나고 말았다.

이러 가운데 한나라당 내에서도 일부 의원들마저 위험한 도박이라며 정치적 타협을 요구하고 있고, 홍사덕 의원 같은 경우 200여억 원에 달하는 서울시민의 혈세가 주민투표 비용으로 들어가게 된다는 점에서도 타당성을 잃은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어 한나라당 내의 차기 대권 구도와 밀접한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고 할 것이다.

결국 전 세계적으로도 무상급식은 대세를 이루고 있는 현실을 감안해 볼 때 국민소득 2만달러 운운하면서 선진국임을 스스로 자인하는 국가에서 아이들의 먹는 문제를 가지고 복지 포퓰리즘이라며 반대를 하는 저의는 이미 드러난 것처럼 자신의 정치적 이해와 맞물린 권한 남용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공정사회를 부르짖는 이명박 정부가 민주주의의 요체라 할 수 있는 절차적 정당성을 상실한 가운데 오로지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 주민의 혈세를 낭비해 가면서 온갖 탈법적인 방법으로 주민투표를 강행하려는 처사는 납득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