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정치 급속 부상

지역주의 정당정치 사회갈등·양극화 문제 해결 무능...시민운동에 의존 상황
내년 양대 선거 젊은층과 사회적 약자층이 기성 정당체제 크게 변화시킬 가능성
시민운동 정치적 중립성은 절대 원칙 아니고 시민-정당정치 적절한 관계 필요

10월 26일 치러진 서울시장 선거에서 시민운동 출신의 야권연대 후보였던 박원순 후보가 53.4%의 지지로 승리했다. 그리고 이를 두고 많은 매체들은 정당정치에 대한 시민정치의 승리라 표현했다. 한편 이번 선거과정에서 한나라당의 나경원 후보는 자신을 시민정치에 맞서는 정당정치의 후보라 주장했고, 따라서 자신이 정당에 바탕을 둔 책임정치를 보다 잘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렇듯, 10·26 서울시장 선거를 계기로 정당정치에 대비되는 의미의 시민정치가 크게 부상했다.

시민정치 현상의 의미

그렇다면 여기에서 말하는 시민정치란 무엇인가? 그것은 선거 과정에서 정당의 주도성이 약화되면서 시민사회의 일부, 즉 진보적 시민사회가 직접 그 후보를 내고 그 시민 후보가 선거정국을 주도했던 현상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이를테면 10·26 서울시장 선거에서 민주당의 주도성이 약화되는 가운데, 시민운동 출신의 박원순 후보가 안철수 교수나 시민운동의 지원 그리고 시민들의 적극적인 지지에 힘입어 서울시장 후보로 나서고 마침내는 당선되었던 현상 자체가 바로 시민정치 현상인 것이다.

그러나 사태를 보다 면밀히 살펴보면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 시민정치가 정당정치와 정면으로 맞서거나 전자가 후자를 대체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당정치가 약화된 가운데 시민정치와 정당정치가 적극 연대하고 결합했던 것, 즉 시민사회의 박원순 후보가 민주당을 비롯한 개혁진보진영의 정당들과 적극 협조했던 것이 이번 서울시장 선거의 정확한 모습이다. 시민운동 출신의 박원순 후보가 야권연대의 후보였던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이번 서울시장 선거를 계기로 크게 부상한 시민정치 현상은 정치에 대해 무엇을 의미하나? 그 하나는 기성 정당의 약화를 의미한다. 즉 기성 정당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와 지지가 약화되면서 시민정치가 급속히 부상하게 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보다 근원적인 문제로서, 대의민주주의의 정당정치는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관료화되고 형식화되어 그 시민 참여가 약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따라서 정당정치는 시민과의 연계에 있어 항상적으로 시민운동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전자가 비교적 단기적인 문제라 한다면, 후자는 보다 장기적인 문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2012년 선거혁명과 시민정치의 역할

그렇다면 보다 단기적인 차원에서 시민정치의 역할은 무엇인가? 이와 관련하여 우리가 무엇보다도 먼저 살펴보아야 할 것은 기성 정당정치의 약화이다. 사실 지금의 정당체제는 1987년 민주화 과정에서 전면 등장하고 이후 1990년 3당합당 과정에서 그 기본적인 틀이 고착된 지역주의 정당체제이다. 그리고 이 정당체제에서는 패권적 영남지역주의가 과거 독재세력의 후신인 보수 정당을 강력하게 지탱해주었던 반면, 과거 민주화운동세력의 연장 선 상에 있는 민주 야당은 소수세력으로서 호남 지역주의에 주로 의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이 같은 지역주의 정당체제에 기반을 둔 정치는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첫째 지역주의 자체가 갖는 한계로서, 지역주의만을 과대 대표하는 지역주의 정치는 그 특성상 여타 사회 갈등을 제대로 대변할 수 없었다. 둘째 1997년 IMF 경제위기는 이후 우리 사회의 심각한 양극화를 초래했는데, 지역주의 정치는 사회 양극화에 기인하는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무능했다.

결국 지역주의 정치가 드러냈던 이 같은 문제점들은 지역주의에 무관하거나 사회 양극화의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던 젊은층과 사회적 약자층의 정치 혐오와 투표 불참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근래에 들어 정치와 투표에 대한 이들의 태도, 특히 젊은층의 태도는 크게 변화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10년 작년에 치러진 6·2 전국지방선거에서부터 젊은층은 투표에 적극 나서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2008년의 국회의원 총선과 비교할 때, 6·2 지방선거에서 20대의 투표율은 약 13%, 30대의 투표율은 약 11% 상승했다.

이후 여러 번에 걸쳐 치러진 재보궐선거와 이번 서울시장 선거는 과거에 비해 높은 투표율을 보여주었는데, 그것은 이제 젊은층의 투표 참여가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같은 기간 동안 사회적 약자층의 투표 참여도 어느 정도 증가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국회의원 총선과 대통령선거가 치러지는 2012년 내년의 선거정국은 그 두 번의 선거를 통해 기성 정당체제를 크게 변화시킬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젊은층과 사회적 약자층의 적극적인 투표 참여로 그 투표율이 크게 상승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요컨대, 2012년 내년은 선거혁명의 시기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이다. 시민정치의 단기적 역할이 바로 여기에 있다. 즉 선거혁명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내부의 동력으로는 그 개혁을 이루 수 없는 기성 지역주의 정당들을 외부로부터 개혁·재편시키고 그럼으로써 지역주의 정당체제를 새로운 정당체제로 변화시켜내는 역할이 바로 그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해, ‘혁신과 통합’의 결성, 안철수 현상, 박원순 후보의 당선 등으로 나타나고 있는 시민정치 현상은 민주당을 비롯하여 개혁진보 정당들의 정당 개혁과 그 질서 재편을 이루어내는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것이다.

운동정치, 생활정치로서의 시민운동

2012년 내년의 선거혁명 과정에서 시민정치가 기성 지역주의 정당들을 개혁·재편시키고 그 정치 질서를 변화시킨다면, 다수 시민운동가들이 이 새로운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사실 그 동안 시민운동가들은 도덕성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이유로 기성 정치에 참여하기를 꺼렸고, 따라서 주로 제도 정치권 밖에서 그 비판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시민운동가였던 박원순 변호사가 서울시장에 취임한 사실이 상징적으로 보여주듯, 그 동안 제도 정치권과 시민운동 사이에 존재했던 벽은 일단 무너졌다.

그러나 장기적인 차원에서, 그리고 선거혁명의 시기가 아니고 정치가 다시 일상으로 되돌아갔을 때에도 시민정치 현상은 지속될 수 있나? 그렇지는 않다. 사실 시민사회는 이념적 또는 비이념적인 여러 차원에서 다양한 요소들이 서로 교차하며 상호간에 영향을 미치는 영역이며, 따라서 지속적으로 변화가 이루어지는 영역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시민사회는 완전히 제도화 될 수 없고, 또 그래서도 안 되는 영역이다. 그렇다면 완전히 제도화 될 수 없는 시민사회 영역을 기반으로 매우 제도화된 형태의 시민정치 현상이 지속될 수 있으리라고 믿는 것은 매우 모순적이다.

오히려 일상의 정치에서 시민정치의 모습은 운동정치 또는 생활정치의 모습을 지녀야 한다. 여기에서 운동정치란, 1987년 민주화 이후 시민운동이 행해왔던 것처럼, 시민운동의 형태로 권력과 제도 정치권의 정당정치를 감시하고 시민들의 이해와 요구를 정당정치와 국가의 정책에 전달하는 바로 그러한 역할을 수행하는 정치라 할 수 있다. 또한 생활정치란 사회 양극화 속에서 시민들의 구체적인 삶을 바탕으로 그들의 생활을 개선할 수 있는 시민운동의 정치적 역할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시민운동의 정치적 중립성이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정치적 중립성이 시민운동의 절대적인 원칙은 아니다. 이념적, 정치적 당파성이 그리 중요치 않은 시민운동의 경우 정치적 중립성은 보다 엄밀히 지켜질 필요가 있을 것이다. 반면 정치적, 이념적 당파성을 가진 시민운동의 경우 그 당파성의 정도에 따라 정치적 중립성의 원칙은 좀 더 유연하게 적용되거나 배제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