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은 삼강오륜의 나라였다

램지어의 위안부는 자발적 매춘이었다는 견해에 대하여 양병철 편집국장l승인2021.02.24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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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조선의 여자들은 누구든 마을 밖을 나다니지도 않았다. 오늘 같은 남녀 간 유희 같은 건 있을 수 없는 엄격한 성분별의 세태기도 했다. 이때는 농경사회였고 가부장 제도로 여성이 어디 제 주관으로 매춘업소로 간단 말인가. 어림없는 소리이다. (사진=연합뉴스TV)

우선 시시비비를 떠나 일제 강점기 조선민중의 생활에 대해 알아보자. 알다시피 조선은 삼강오륜의 나라였다. 이 삼강오륜이 조선의 이념이었다. 이러해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해 처참한 상태였어도 남녀 간은 분별이 있었으며, 이게 심화되어 남녀칠세부동석이라고 회자되었다. 이런 흐름으로 저 일본은 당시 일본의 도회 어디든 유곽이 있었지만 조선엔 없었다. 저 일제의 저속한 성풍습으로 저들 일제가 조선의 도회에 유곽이며 공창을 만들었음이 주지의 사실이다.

당시 조선의 여자들은 누구든 마을 밖을 나다니지도 않았다. 오늘 같은 남녀 간 유희 같은 건 있을 수 없는 엄격한 성분별의 세태기도 했다. 이때는 농경사회였고 가부장 제도로 여성이 어디 제 주관으로 매춘업소로 간단 말인가. 어림없는 소리이다.

이때의 조선여인은 식민지가 준 삶으로 극도의 빈한에 처해 그 비참한 생활이었어도 정조관이 유난했다. 일군봉사로 한 지아비에게 그 정절을 바치는 게 여인의 최고 가치였다.이런 조선여자들이 일제의 그 군부대로 나돌며 매춘을 하려 스스로 나섰다고?

그 침탈이며 탄압으로 그 비참함이 이만저만 아니었어도 조선의 여인, 누구든 자발적임은 없었다. 일제 강압적인 강도짓에 의한 거였다. 그때 일제를 두고 군국주의라고 했다면, 조선여성을 징발하라는 체제에서 요구가 있었다. 여자만 보이면 납치해 부두로 보내다 나중엔 아주 조직적으로 조선처녀를 꾀었다. 내지의 공장으로 취직시켜 주겠다는 거였다. 그리고 군국주의 기치가 광적이 되어 여학교마다 정신대로 나가자는 운동이 펼쳐지기도 했다. 이리하여 공장에 취직시켜 주겠다는 꼬임에 빠지고 저 황군의 일을 돕는다는 속임으로 그 얼토당토 않는 일본군 부대에 끌려간 거였다.

여기서 하나. 세계 어느 시대 어느 나라가 군대에 위안소를 운영했단 말인가. 그 아무리 성욕이 팽배했다 해도 그렇지 일본군이 있는 곳엔 위안소를 꾸린 거였다. 이런 위안소는 저 황군과 혼연일체의 황국관을 만들어 남방의 여러 섬에선 미군의 공세에 더이상 버틸 수 없어 옥쇄를 강요하기도 한 당시의 저 군국주의자들. 오키나와에서 1천명 가까이가 그렇게 해 그 절벽에서 시푸른 바다를 보고 우리 위안부들이 뛰어내렸다 한다. 천황의 신민이니 옥쇄하라는 거였다.

이런 군국주의 구조에서 그 불쌍한 위안부들이 자발적으로 매춘을 했다고. 램지어, 그 아무리 일본 기업으로부터 돈을 받았고 역사의식이 없다지만 조선여인에게 어떻게 그런 망발을 하는가. 우리 조선여성 그렇게 타락하지 않았다. 그런데 램지어 논문을 이 땅의 인간이 지지한다며 나선 단체가 있는가 하면 몇몇 인간들이 있음에 그 죄 만고에 이르리라. 그 죄 청사에 오르리라.

양병철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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